[필자 주] 이 글은 모 연구기관 자문용으로 작성된 글의 일부입니다.  

이 문제에 답을 찾기 위해서는 저널리즘에 대한 정의가 전제 돼야한다. 저널리즘을 사실 보도 중심의 정보 전달 기능으로 한정하는 경우와 1830년대 ‘웨스터민스터’의 정의대로 “의견과 사실을 교환하는 것”으로 인식할 때, 답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만일 저널리즘을 전자 중심으로 정의한다면 기술은 저널리즘의 구현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비욘드뉴스’의 저자인 미첼 스티븐슨 교수는 뉴스와 저널리즘을 분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뉴스 속 등장인물이 한 말을 단순히 받아 적거나, 아무리 믿을 만하더라도 쉽게 얻을 수 있는 사실을 단순히 기록하는 것은 지혜의 저널리즘이 아니다. 17세기 유럽에서 유통된 뉴스시트들에선 지혜의 저널리즘이 없었다.”(비욘드뉴스, 14쪽)

공개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단순 사실을 열거하거나 혹은 그 사실 속에서 특별한 이슈를 발견하는 기초적인 작업은 기계에 의해 수행될 만한 것들이다. 이미 알고리즘 저널리즘을 통해서 데이터 안의 특이점을 발견하고 이를 기사화하려는 시도들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국내 언론사가 대부분의 의존하고 있는 출입처 기반의 취재원 발언 브리핑과 브리핑 속의 특성 발견도 기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이다. 취재원의 음성을 텍스트화 하고, 해당 텍스트 속에서 중요한 코멘트를 추출하는 과정은 비교적 빠르게 기술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것들이다. 기존 기사 데이터베이스만 갖추고 있다면,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는 발언을 중요한 리드문이나 제목으로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은 저널리즘의 정의를 확장하거나 본질로 되돌릴 것을 요구한다. 단순 사실을 전달하는 리포터가 저널리즘의 핵심 주체가 아니라 사실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관점을 제시하는 사실적 해석가를 저널리스트의 중심축에 올려놓을 것을 기대하고 있어서다.

관점의 독창성은 현재 기술이, 혹은 알고리즘이 추론의 로직으로 실현하기엔 멀고도 먼 영역이다. 인공지능을 상징하는 딥러닝 알고리즘은 패턴의 추출, 군집화(혹은 분류), 예측의 프로세스로 진행된다. 관점의 독창성은 공통 특성 추출의 단계가 고도로 복잡해지거나 혹은 예외적 경우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동일 글을 기계가 모사하기에는 판별의 예외적 경우에 해당하는 확률이 높아 좋은 글인지 아닌지조차 가늠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관점의 독창성이 저널리즘 정의에 중요한 요소로 다시금 조명받는다고 전제한다면 기술이 저널리즘을 구현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위 질문은 저널리즘의 정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저널리즘을 협애한 범위로 정의한다거나 혹은 정보 생산 영역 중심으로 기술한다면 기술이 저널리즘 행위를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저널리즘의 본질이냐에 의구심을 남기게 된다.

정보와 의견의 상호교환 혹은 소통으로 확장한다면 해답은 달라진다. 기계가 의견 제시를 위한 추론을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에 독창성을 담기란 대단히 어려운 문제다. 오히려 알고리즘과 저널리스트가 협력할 때 저널리즘의 본질에 도달하는 속도는 더 가속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정되고 경직된 저널리즘의 정의, 예를 들어 사실에 바탕을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 기능 수준으로 정의한다면 알고리즘이 범접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국내 상황을 가정할 경우, 비판 기능의 저하는 확인된 사실을 보도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오히려 이 같은 상황과 이와 같은 정의 하에선 알고리즘이 저널리즘 역할을 대신할 몫이 더 커진다 수 있다. 저널리스트의 게을음과 의식 부재의 상황에선 사실을 보도하는 알고리즘만으로도 저널리즘 기능을 구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저널리즘의 정의, 저널리즘의 처한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 기술이 저널리즘 수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