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가 세상을 분류한다. 아니 알고리즘이 세상을 쪼개고 나눈다. 인공지능의 기반 기술이라 할 수 있는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은 인간 사회를 적절한 군집으로 나눠놓는 기술 장치다. 이미지 학습으로 개와 고양이를 분류하듯, 인간 사회를 군집화(clustering)하고 분류(classifying)한다. 이를 기계가 쪼개놓은 사회(Machine Clustered Society)라고 불러보자.

기계가 쪼개놓은 사회의 양상은 독특하다. 이념과 가치관, 성향에 따라 나뉜 사회를 더 극단으로 치닫게 한다. 극화(polarization)를 강화한다는 의미다. 중간지대(중도)라는 모호함을 학습을 통해 쪼개고 나누어 어떤 영역으로든 편입시킨다. 더 세밀한 군집화를 위해서는 더 많은 사용자들의 데이터들이 생산돼야 한다. 플랫폼에 자리잡은 알고리즘은 이 과정에서 데이터를 뽑아내는 흡입기, 즉 석션의 역할을 도맡는다.

물리적 석션과 알고리즘은 흡입한 찌꺼기를 어떻게 다루느냐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석션은 불순물들을 흡입해 버리는 통로로 연결되지만, 알고리즘은 새로운 생산의 재료로 변환시킨다. 매일매일 페이스북에서 남기는 사용자들의 로그들을 흡입해 군집화와 추천 시스템의 원료로 재가공한다. 자잘한 찌꺼기마저 살려내 그들의 수익으로 변환시킨다.

클러스터링된 그룹끼리 교류가 차단된 공간

페이스북은 기계가 쪼개놓은 16억명의 거대한 커뮤니티다. 사용자가 뱉어낸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용자를 클러스터링 한다. 그렇게 나뉜 그룹끼리는 정보의 교류가 차단된다. 그 사례를 확인하기 위해 가디언 편집국장이 ‘어떻게 기술은 어떻게 진실을 와해하는가’에서 인용했던 시민운동가 톰 스타인버그의 페이스북 포스트를 보자.

 “나는 브렉시트 승리를 축하하는 사람들을 페이스북을 열심히 찾았다. 그러나 필터버블은 너무 강력했다. 페이스북의 커스텀 검색까지 활용했지만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이 나라의 절반 이상이 분명 오늘을 ‘환희에 찬 날’이라고 했음에도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것을 내가 이렇게 찾고 있음에도….” 

동일한 현상은 미국에서도 목격됐다. 트럼프를 지지했던 ‘샤이 트럼프‘들은 그들의 고립된 네트워크 속에서 허위 정보를 퍼나르며 공감을 확대해나갔다. 이들이 소비하는 정보는 다른 시선에 포착되지 않았다. 거대한 네트워크 속에 존재했지만 외따로 떨어진 공간에 독립적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언론은 응집된 두 집단을 연결시키는 구조적 공백(Structural Hole)1의 위치를 차지하는데도 실패했다.

이처럼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은 연결하면서 동시에 고립시킨다. 연결과 고립의 동시 작용은 저널리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가장 심각한 결과는 탈 진실(Post Truth)화이다. 옥스퍼드 사전은 탈 진실을 “객관적 사실이 공중의 의견을 형성하는데 개인적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보다 영향력을 덜 끼치는 환경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저널리즘이 중시하는 팩트의 가치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환경이 조성된다는 의미다. 이 공간에 팩트의 설자리는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지만, 페이스북이 ‘선호’에 따라 쪼개놓는 사회에서는 정확한 사실보다 감성적 옹호를 담은 정보가 더 활발하게 유통된다. 수용하기 불편한 팩트는 선택적 지각(selective perception)에 따라 거부되거나 배척된다. 배척된 정보의 소스는 그들의 뉴스피드 창에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사용자들의 확증 편향은 이러한 루프 속에서 강화된다. 다른 의견의 교차는 소멸되고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는 검증되지 않는 페이크 뉴스가 사용자들의 일상을 지배한다.

물론 영국의 브렉시트 통과, 미국의 트럼프 당선에 페이스북이라는 기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없다. 켄타로 토야마2의 표현을 빌리자면 페이스북이라는 기술은 시민들의 이 같은 심리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믿고 싶은 것을 믿고 싶은 심리를 페이스북은 알고리즘이라는 교묘한 편의 장치로 부추기고 확장시킨 것이다.

팩트 시대의 종말?

페이스북이라는 기계가 쪼개놓은 사회에서는 진실과 허위가 동격으로 취급받는다.3 무엇보다 중요하게 다뤄지는 요소는 ‘좋아요’로 상징되는 사용자들의 취향이다. 사용자의 ‘좋아요’는 진실과 허위를 가리지 않는다. 자신의 신념과 확신을 강화해줄 수 있다면 그것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좋아요의 동등한 대상이 된다. 진실과 거짓이 해체된 공간에서 ‘팩트 팩트‘를 외치는 것은 그야말로 우스운 꼴이 된다. 오죽하면 가디언 편집국장인 캐서린 바이너가 “팩트는 독자들의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활자 시대의 유물”이라고까지 선언했겠는가.

페이크 뉴스는 기계가 쪼개놓은 사회의 한 단면일 뿐이다. 허위 정보가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었지만, 발견되지 못하는 공간, 혹여 그것이 사실 아니더라도 다른 정보와 뒤섞여 검증되지 못하는 가상적 일상, 그 모든 일이 벌어지는 환경이 페이스북을 위시한 소셜미디어다. 이들의 네트워크 집중도는 더욱 강화되고 있고, 제2, 제3의 경쟁자들은 이들의 손에 먹히고 있다. 페이스북의 지배력이 강화할수록 팩트의 위상는 추락할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징후는 메신저의 급부상이다. 메신저는 페이스북만큼 개방적이도, 최소한의 교차 검증도 불가능한 가상 공간이다. 메신저의 위상이 절대적인 국내에서 페이크 뉴스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전파되는 현상은 자연스럽다. 탄핵 국면에서, 수많은 허위 정보들이 특정 집단의 카카오톡으로 끊임없이 재전송되는 풍경은 낯설지 않다. 페이스북은 인위적인 알고리즘 교란으로 저항을 시도해볼 수 있지만 메신저는 그조차도 무력화된다. 기계가 쪼개놓은 사회는 페이스북에서 그리고 메신저에서 더욱더 수렁으로 빠져들 개연성이 높다.

이 글은 ‘방송기자’ 2017년 1,2월호에 게재된 내용을 일부 보강하고 수정했습니다.


  1. 로널드 버트 시카고대 교수가 창안한 개념이다. 네트워크 상에서 집단극화된 응집된 그룹을 연결시키는 위치를 의미한다. Burt, R. S. (2004). Structural holes and good ideas1.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110(2), 349-399. 

  2. <기술 중독 사회>의 저자이다. 

  3. 페이스북과 구글이 페이크 뉴스에 대한 여러 제재 방침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더 많은 공유와 클릭, 리액션이 알고리즘의 중심 가치로 통용되는 이 공간에서 팩트와 팩트 아닌 것의 차이와 분별이 이들에게 가장 중대한 요인으로 수용되긴 쉽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