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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카는 디지털주의에 대한 강력한 비판가이면서도 러다이트로 나아가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 이데올로기를 공격하면서도 기술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는다. 다만 그는 인간 중심의 기술, 인간 중심의 자동화(Human centered automation) 설계를 강조한다.

기술 설계는 사회적 과정이다. 한때 나는 기술을 인간 욕망의 발현체라고 접근한 적이 있다. 기술은 인간에 의해 설계되는 대상이지 기술 스스로 제작되지 않는다. 때문에 설계자의 사회적 이해가 깊숙하게 개입될 수밖에 없다.

많은 수의 기술들, 그 이면에는 부의 단기적 축적이라는 자본주의적 욕망이 자리를 잡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한 기술 개발, 돈을 위해서라면 또다른 소수 인간의 생존을 파괴해도 된다는 기술 기반의 시장만능적 사고가 그 기술 내에 뚜렷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이를 파스퀴넬리는 ‘디지털리즘’이라고 표현했고, 모로조프는 ‘디지털 신자유주의’라고 칭했다.

디지털 신자유주의든 디지털리즘이든, 샌프란시스코 이데올로기에서 파생된 기술들은, 돈과 교환될 수 없는 공공적 가치의 대상까지도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시장화한다. 그리고 자동화하고 기술로 대체한다. 투기자본의 공공/사회적 영역 침투에 비판적인 여론들은 혁신이라는 이름 하나면 모두 무력화된다. 혁신이 문제가 아니라 혁신 추종주의가 문제인 세상이다.

‘유리감옥’. 그는 앞서 언급했듯 인간 중심의 자동화를 강조한다. 에어버스와 보잉의 조종간 설계를 비교하며 전면적 자동화를 지향하는 에어버스의 조종간보다 조종사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보잉의 조종간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인간 중심의 기술 설계는 혁신이라는 이름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혁신, 어떤 기술적 코드를 지닌 기술을 만들까에 대한 그의 답변이다. 인간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기술, 그것을 지향하는 설계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니콜라스 카는 말한다.

“인간 중심의 디자인은 기계의 능력에 대한 판단에서 출발하기보다는 기계를 조작하거나 기계와 상호작용하게 될 인간이 가진 장점과 한계를 면밀히 평가하는 일에서부터 출발한다. 이런 디자인은 기술 발전에서 최초의 인간공학 연구자들에게 영감을 줬던 인도주의적 원칙들이 중요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목적은 컴퓨터의 속도와 정확성을 활용하면서 노동자들이 루프 밖이 아니라 루프 안에서 적극적이고 기민하게 일할 수 있도록 기계와 노동자 사이의 역할과 책임을 나누는 것이다.”(244쪽)

니콜라스 카의 ‘유리감옥’ 출간으로 국내에서 유독 척박한 기술 비판 담론이 조금이나마 확장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나 인간 중심의 대안적 혁신 담론이 싹트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