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전 그때 말로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대학에 입학했던 시절. 대학은 가장 순수하고 경건하며 가장 오롯한 문화를 간직한 공간인 줄로만 알았다. 유학파 교수들의 질높은 강의와 우수한 재원들의 치열한 논쟁과 토론으로 가득찰 거라 믿었던 대학.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채 1-2년도 가지 않아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대학은 그야 말로 주검 그 자체였다. 피가 콸콸 흘러넘치며 활기를 내뿜는 공간은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시험은 10년전 족보만 외면, 얼마든지 B이상은 받을 수 있었다. 강의는 일방통행식 주입방식으로 진행됐고, 학생들은 늘 노곤한 눈빛으로 멍하니 칠판만 바라보고 있었다. 강의 예정시간을 1분이라도 넘기면 ‘잉잉’ 대기 일쑤였고, 그나마 활발한 토론이 꽃을 필라치면, 우루루 강의실 밖으로 몰려나가는 학생들의 발자국 소리로 중단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교수라는 집단은 학생들에 대한 애정보다는 선배로서의 권위를 강조하기에 급급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고액 연봉 교수라며 자랑하거나 노골적으로 골프 실력을 강의 시간에 과시하는 ‘나르시스’형 교수도 적지 않았다.

연구 실적이라곤 박사 졸업 논문과 몇몇 학회에서 발표한 정치성 소논문이 다였다. 그나마도 정교수 임용을 위해 실적용으로 써둔 것들 뿐이었다. 그들은 대학원생의 우수 논문에 자신의 이름을 가져다 붙이는 파렴치한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교수들은 자신과 공동 명의로 나가면 유학갈 때 편해진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이러한 행위를 부추겼다.

교수 임용을 둘러싼 파벌간 싸움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어느 대학 출신이냐, 누구의 제자냐가 임용을 가름하는 잣대였다. 줄을 선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임용 절차로 여겨졌다. 이러한 파벌 간 싸움 때문에 정작 학생들이 바라고 갈망하던 우수한 인재는 강의실 문턱을 넘어오지 못했다. 오히려 돈 좀 있고, 빽 좀 있는 선배 종속형 학자들만이 연구실을 늘 메우고 있었다.

대학원생의 연구비를 사실상 편 갈취하는 교수는 너무 많이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학생 명의로 통장을 낸 뒤, 돈이 들어오는 대로 뽑아 자신에게 넘겨주라는 요구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인식됐고, 대학원생들은 그 돈이 자신의 노동의 대가라는 사실은 전혀 깨닫지 못했다. 깨닫지 않는 것이 어쩌면 정상인 것처럼 여겨졌다.

죽어버린 대학. 그 속에서는 난 10년 가까이를 보냈다. 무엇을 배웠는지, 그리고 무엇을 잃었는지 정확히 대차대조표를 만들어 비교해 볼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건, 내가 교수로부터 앎의 쾌락을 전수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학회나 동아리 등 과외활동을 통해 지식과 생각과 고민을 살 찌울 수 있었다. 나의 등록금은 그들에게 받쳐져야 옳다는 생각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오늘도 대학 비리와 관련된 뉴스가 터졌다. 이미 곪아 터져버렸어야 할 대학비리가 지금 와서야 문제된다는 것이 참으로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정작 SKY라는 강고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명문대학에선 비리 혐의가 적발돼 구속됐다는 소식은 접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자기 손으로 친구나 선생님의 팔목에 은색 팔찌를 채우기 싫어던 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내가 목도했던 교수들의 비리는 전부 허구에 불과했다는 것일 게다.

그래서 검찰에 대한 불신은 더욱 깊어지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