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은 과학이다. 창업이 과학이라기보다는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그것이라는 의미다. 에릭 리스가 ‘린 스타트업’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스타트업의 성공은 좋은 유전자의 결과나 시기, 장소 때문이 아니다”라고 강조한 배경이다. 그의 지론은 “올바른 프로세스를 따름으로써 성공을 얻어낼 수 있다”는 거다.

과학적 프로세스를 따르면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명제는 허언은 아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가볍듯 무겁게 건네는 말, “성공을 장담할 수 없지만 실패 확률을 낮출 수는 있다”는 얘기도 실은 성공에 이르는 경로가 존재한다는 확신이 있어서다. 하지만 그 경로는 다시 강조하지만 방법론이다.

에릭 리스는 테일러를 존경한다. 포디즘의 기초를 닦아 인간의 기계화, 인간의 부속화, 자동화에 의한 대체를 초래했던 그 경영 이론가를 내적 스승으로 삼고 있다. 공경의 메시지를 연거푸 보내지만 그의 이론은 제대로 해석되지 못했다고 말한다. 시간과 동작의 면밀한 작동 과정을 측정해 분업과 탈숙련화를 초래했던 테일러도 애초에 인간의 귀함을 상정했다고 재해석한다. 그의 해석이 그릇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테일러리즘이라는 개념 속에 테일러가 지향했던 가치와 비전은 일부 폄훼되거나 삭제되기도 했던 탓일 게다.

에릭 리스의 린 스타트업은 테일러의 연장이다. 하지만 테일러리즘과는 단절의 위치에 서 있다. “뛰어난 역량을 지닌 개인을 찾아 승진시키는 일은 과학적 관리와 상충되지 않는다고 테일러는 계속해서 주장했지만 그 주장은 금방 잊혀졌다”고 아쉬움을 토로한 배경일 게다. 그래서 에릭 리스는 린 스타트업을 운동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린 스타트업 운동은 ‘삭제된’ 테일러의 복권이면서 동시에 인간을 중심에 둔 과학적 경영 방법론의 제안인 것이다.

린 스타트업의 핵심은 과학적 방법론으로 낭비 줄이기

린 스타트업 방법론은 낭비를 줄여야 한다는 일관된 목소리를 반복적으로 재생한다. 테일러의 효율성과 이렇게 맥이 닿는다. 낭비는 ‘유효한 학습‘이라는 개념과 결합한다. 에릭 리스는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는 활동이 아니라면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권유하는데 이런 유형이 바로 낭비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학습하지 않고, 스스로 상상하면서 불 지피는 행위, 그것이 낭비인 것이다. 스타트업 창업가들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상상의 고객’, 그 고객에게선 배울 것이 없다는 의미기도 하다.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만들기 – 측정하기 – 학습하기‘ 이 3단계의 반복 구조를 내재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당연히 무엇을 만들 것이고 어떻게 측정할 것이며, 무엇을 학습할 것인가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만들고, 고객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을 측정 지표로 삼으며, 배운 것을 다시 제품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만들고 측정할 때에는 가장 위험한 가정에서부터 출발하라고 제언한다. “이러한 위험한 가정을 완화해 지속 가능한 사업의 이상향으로 향하는 방법이 없다면 다른 가정을 테스트 해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어서다.

스타트업 성공은 신이 내린 우연은 아닐 수 있다

그렇다. 가정이다. 린 스타트업은 전언했다시피 과학이다. 가정, 가설, 검증이라는 용어가 이 책 전체에 난무하는 것도 방법론으로서 과학이어서다. 스타트업은 가정에서 출발해야 하고 세부 가설을 설계해야 하며 이를 고객의 데이터를 통해 검증하고 학습해야 한다. 마치 한 편의 논문을 쓰는 과정이 바로 스타트업을 성장시키는 프로세인 것이다. 그래서 성공 프로세스는 신이 내린 우연의 선물이 아니라 학습 가능한, 그리고 가르침이 가능한 영역이다. 에릭 리스가 굳이 이 책을 써내려가면서 알려주고자 한 이유도 성공을 우연쯤으로 치부하는 선입견에서 벗어나길 기대해서가 아닐까 한다. 테일러가 현대 기업의 경영 관리 방법을 통해 성공적인 관리 방법을 창안한 것처럼 에릭 리스도 스타트업에서 시작하는 경영 관리 방법론을 통해 성공의 지침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는 디테일한 관리 방식이 사례를 통해 세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특히 측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실행 지표(actionable metrics)와 허무 지표(vanity metrics)를 구분하는 것, 이를 통해 귀담아 들어야 할 고객과 그렇지 않은 고객을 분리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그는 혁신 회계(innovation accounting)이라 부른다. 국내 많은 스타트업들이 빠지게 되는 함정이 바로 허무 지표의 성장이다. 전체 회원/고객수, 페이지뷰 등 고객과 시장을 특정하지 않고, 잔뜩 성장의 기대만 만족시켜주는 거시 지표가 허무 지표다. 허무 지표는 학습할 게 없으며 낭비를 초래하는 원흉이다. “어떤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고 어떤 것이 나쁜 결과를 가져왔는지 원인과 결과를 정확히 분석하기 어렵”(136쪽)게 한다.

허무 지표에 빠진 스타트업과 대기업 신규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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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스타트업들은 허무 지표로 위안을 얻고 허무 지표로 IR를 시도한다. 그것이 허무 지표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성장의 착시효과는 허무 지표의 설정과 측정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게 에릭 리스의 지적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것처럼, 이 작은 과정 하나하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사이비 과학이 득세하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을 그는 경계한다. 테일러리즘이 왜곡 해석된 사례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린 스타트업은 스타트업 창업 초기, 혹은 창업 직전에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다. 기왕이면 꼼꼼하게 기록으로 남기면서 숙독하길 권한다. 그리고 목차를 통해 써내려간 과정들을 다시 되짚어 보면 좋다. 필요하다면 각 단계별로 훑어가는 것도 방법이다. 대기업에서 신규 사업 부서를 이끌고 있다면 주목해도 된다. 에릭 리스는 스타트업을 “극심한 불확실성 속에서 신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려고 나온 조직”(17쪽)이라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벤처 기업만을 의미하지 않고 위 정의를 충족시키는 대부분의 인적 구성을 그는 스타트업으로 범주화하고 있다.

끝으로 다시금 강조하려고 한다. 스타트업의 성공 프로세스는 과학이다. 그의 말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이 경험적으로 공감하는 바이기도 하다. 창업가와 스타트업 조직의 창의성을 북돋고 역동적으로 작동시키는 과정은 과학적 방법론으로 운영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테일러 식의 시간과 동작의 세분화한 통제 과정이 아니어야 한다. 에릭 리스의 말을 빌리면 “효율성이라는 테일러의 관념을 개별 작업 단위가 아니라 전체 회사 조직 단위로 확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린 제조는 공장 노동자에게 숨겨진 지혜와 주도력을 재발견하는 과정“이었기에 린 스타트업 방법론도 사람의 지혜와 창의력을 재발굴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스타트업의 시작은 비전이며 비전은 직관적이다. 다만, 비전을 성공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방법론은 과학의 영역임을 애써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