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관점 ‘독자’ 즉 오디언스

수익모델은 사용자들과의 교환 행위다. 누구에게 무엇을 제공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 이후에 따라붙는 보상체계다. 제공의 가치가 달라지면 보상받는 규모와 방식, 유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무엇을 줄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개념에 대한 규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저널리즘은 민주주의의 보루라는 관념이 존재한다. 이 명제는 좋은 저널리즘은 공짜가 아니다라는 명제로 이어진다. 좋은 저널리즘이 생산되기 위해서는 비용이 발생하므로, 그 비용에 대해 저널리즘 조직은 사용자들에게 과금할 수 있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논리엔 한 가지 빈틈이 존재한다. 사용자들, 시민이 저널리즘(저널리즘 결과물의 생산)을 요청했는가 혹은 요구했는가이다. 또한 그 결과물이 사용자들, 시민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었는가이다.

일방적으로 저널리즘의 결과물을 공급한 뒤에 비용을 청구하겠다는 논리 이면에는 공급자 편향의 접근법이 남아있다. 공급이 곧 가치가 되던 미디어 환경에서 통용되는 논리다. 정보 자체의 희소성이 가치를 보전해주었고, 희소 정보를 취득하기 위해 많은 시민들이 기꺼이 비용도 지불했다. 또한 저널리즘 조직은 희소한 정보를 집 문앞까지 배달됐고, 이로 인해 파생된 비용까지도 시민들은 부담했다.

인터넷의 등장 이후 급변한 미디어 환경에서 정보의 희소 가치는 사실상 소멸했다. 저널리즘의 생산 주체가 다양화했고 파편화했다. 저널리즘 주체가 독점화했던 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물음이 남는다. 저널리즘의 무엇이 희소한가? 또한 저널리즘 조직은 시민들에게 어떤 편의와 유익을 제공하고 있는가?

저널리즘, 탐사보도 = 민주주의 등식의 위상

신화나 신념은 가끔 저널리스트들의 비판적 의심을 짓누르거나 은폐한다. 그 가운데 으뜸은 저널리즘이 당연히 민주주의에 기여한다고 하는 신념 체계다. 적지 않은 이론가들이 둘 사이의 관계를 부정하거나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20세기 초반 구축된 이 이론과 신화는 좀체 질문을 허락하지 않는다.

“기자들이 신봉하는 저널리즘의 민주주의 이론의 가장 큰 맹점은 바로 그들이 공중에게 제공하는 정보가 자동적으로 민주주의를 신장시킨다는 생각”이라는 허버트 갠즈의 비판은 지금도 유효하다. 히어켄(Hearken) 미디어의 창립자 제니퍼 브랜들의 “저널리즘은 변화의 이론을 업데이트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탐사보도가, 공직자에 대한 폭로성 특종이 민주주의를 향상시키는데 자동적으로 기여할 것이라는 명제는 논리적으로 여전히 허술하다.

탐사보도가 제공하는 깊이있는 정보가 없어도 시민들은 그들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정치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또한 시민들은 황우석사태에서 확인할 수 있듯, 자신들의 신념과 입장을 지키기 위해 중대한 보도를 외면하거나 거부한다. 미국의 페이크 뉴스는 신념 체계와 벗어난 탐사보도와 정보를 시민들이 신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정보 제공이 교양있는 시민을 양성해 민주주의 질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고전적 믿음은 지금 의심과 성찰을 필요로 한다.

구독전환을 통해 본 사용자 경험과 유익

디지털 시대, 저널리즘의 사회의 의미와 보상체계로서 수익모델은 사용자경험(User eXperience)이라는 개념을 통해 연결된다. 사용자경험은 미디어 사용자들이 대상물의 가치를 통해 얻게 되는 만족감과 효능감과 같은 총체적 경험을 일컫는다(신동희&김희경. 2015). 비즈니스 관점에서 어떤 대상의 바람직함, 유용함, 중요성 등을 고려했을 때의 질로 정의되기도 한다(권순모&장혜지. 2018). 즉 저널리즘에 있어 사용자경험(혹은 독자 경험)은 저널리즘 조직의 생산물인 기사나 보도와 관련해 획득할 수 있는 유용함과 중요성 등 유무형의 유익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관점에서 최근 뉴욕타임스의 구독 전략 전환을 분석하면 수익모델과 관련한 여러 함의를 얻을 수가 있다.

뉴욕타임스는 2017년 1월 ‘독보적인 저널리즘’ 선언 이후 서비스(가이드) 저널리즘이라 불리는 콘텐츠 영역의 생산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웰빙을 위한 가이드 콘텐츠를 지속적이고 꾸준하게 제작하고 있다. 웰빙 섹션은 로그인을 요구하는 페이월 시스템 아래에서 기획된 첫 번째 오리지널 콘텐츠 유형에 해당한다. 이 섹션의 특징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방법’과 같이 자신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직접적이고 유익한 콘텐츠를 주된 내용으로 담고 있다.

웰빙 섹션은 비구독자를 구독자로 유인하는 콘텐츠 전략의 일환으로 탄생했다. 뉴욕타임스의 독자경험 제품 총괄인 사라 브레멘 랍스터네크는 “웰빙 섹션은 다른 곳에서는 얻을 수 없는 인사이트를 독자들이 느낄 수 있는 유형의 콘텐츠를 구독자들에게 제공하는 방법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미디어에서 얻을 수 없는 뉴욕타임스만의 고유한 인사이트를 독자들에게 제공할 때, 독자들은 지불의사를 밝히게 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뉴욕타임스의 가이드 저널리즘은 상품으로서의 콘텐츠라는 기존의 접근법을 우회한다. 그보다는 뉴욕타임스만의 특별한 독자 경험을 콘텐츠를 통해 제공함으로써 독자의 지갑을 여는 전략이다. 이는 상품으로서의 저널리즘이 아니라 서비스로서의 저널리즘이라는 인식의 전환 속에서 시도된 사례에 해당한다.

독자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직접적인 유익과 구독료는 교환의 지평 위에 존재한다. 웰빙 섹션이 제공하는 콘텐츠들의 가치는 정보의 희소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내용과 정보만을 본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접근할 수 있는 대상물이다. 하지만 그 콘텐츠가 유일무이하게 제공하는 희소적 가치는 인사이트라는 무형의 경험이다.

실체화한 독자 경험과 유익으로서 민주주의

저널리즘=민주주의라는 등식은 수익모델을 상상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수익모델은 오디언스의 기대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한국이라는 고유의 저널리즘 생태계에서 탐사보도가 제공해줄 수 있는 사용자에 대한 유익(Benefit)이 무엇인지를 증명해야 한다. 이는 어디까지나 저널리즘 조직(보도 제공자)의 몫이다.

독자는 그 유익에 대한 반대 급부로 구독, 기부, 후원을 내놓게 된다1. 사용자들에게 구독, 기부, 후원은 지갑을 여는 일체의 단일한 행위다. 그것의 구분은 수익을 취하는 방식과 언론사의 형태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사용자 입장에선 유익에 대한 보상 행위인 셈이다.

모두가 이해하는 명제이긴 하지만 실현하기 어려운 숙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민주주의가 실체화된 독자 경험의 형태 즉, 유익으로 사용자들에게 제공돼야 하기 때문이다. 독자가 기대하는 유익은 유형물에 한정되지 않는다. 심리적이고 비물질적일 수 있다. “상품의 느낌으로 뉴스를 제공하면 저널리즘의 멤버로 참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분석(Hansen, Goligoski. 2018 : p.14)은 그래서 설득력을 더한다.

한국의 민주주의에 기여하고 있다는 대리만족, 탐사보도로 나의 삶이 혹은 나의 가족의 삶이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심리 등이 사용자 경험으로 제공될 수 있어야 한다. 사용자 경험으로서의 유익은 사용자의 의식에서 구상될 수 있어야 하고, 삶과의 관련성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문제제기나 담론 그 자체가 독자의 경험으로 소구력을 갖긴 쉽지 않다.

후원 독자의 분산성과 언론의 독립성

유념할 점은 또 있다. 저널리즘의 독립성은 모든 기여(기부) 주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비영리 재단의 지원금 유치는 해당 재단의 의제를 반영해야 하는 한계과 맞부딪힌다. 개별 독자라 하더라도 이해관계 집단으로서 단일 정체성을 갖춘 이들이라면 저널리즘의 독립성은 휘청이게 된다. 따라서 기부, 후원 집단의 분산과 다양성은 저널리즘 조직의 독립성을 위해서라도 중요한 전제 조건이 된다.

예를 들어, 특정 신념 집단이 비영리 저널리즘 조직 후원자의 다수를 차지하게 될 경우, 신념과 배치된 보도 행위에 대한 저널리스트들의 자기검열을 양산한다. 특정 신념 체계에 종속된 개별 후원자들의 집합이 이와 배치되는 이해관계에 대해 거세게 저항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7년 3월 문재인 SNS 기동대 보도 이후 뉴스타파 후원자 해지가 특정 신념 체계 집단을 중심으로 이뤄진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기부, 후원 집단의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보상체계는 신념의 교환이 아니라 유익의 교환이 될 필요가 있다.

저널리즘이 잃어버린 감각 ‘독자’

보스턴 글로브의 전설적인 탐사보도 저널리스트인 마이크 레젠데스는 “탐사보도가 구독을 증대시킨다”라고 말한 바 있다. 나아가 탐사보도의 존재 이유는 “세상을 바꾸고, 우리 공동체의 삶은 더 나아지게 하고,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했던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함으로써 사회적 정의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질문을 남겼다. “당신의 스토리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 나에게든 세상에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스토리가 아니라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탐사보도는 그것이 무엇이든 사용자들로부터 유무형의 보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그것이 독자 경험으로 실체화할 수 있는 유익이 제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탐사보도에도 독자 중심의 관점이 요구된다. 그들이 탐사보도를 통해 어떤 경험을 기대할 수 있는지 설명되고 상상될 수 있어야 한다.

유익은 비영리 저널리즘 조직의 수익모델 다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유익보다는 공동의 신념 체계의 교환으로서 기부(후원)는 해당 신념 집단 규모와 신념의 투영 대상의 위상 변화(정권 교체)에 따라 저널리스트의 자기검열을 내재화할 위험을 안고 있다. 반면 유익의 교환으로서 멤버십은 제공되는 보상, 즉 사용자경험에 따라 수익성이 변동되지만 저널리즘 행위 자체에 미치는 영향을 그리 크지 않다.

비영리 저널리즘 조직이 수익 측면에서 지속가능성을 갖추고, 저널리스트의 자기검열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기부(후원) 의존하는 모델에서, 멤버십과의 균형을 이루는 방식으로 진화할 필요가 있다. 비영리 저널리즘 조직이 축적한 다양한 자산(네트워크, 전문성, 시간 등)으로 사용자들을 초대함으로써 관계 비즈니스를 구축하고 지속할 수 있다. 오로지 잃어버린 감각으로서 ‘독자‘에 대한 감응성만을 되찾으면 된다.

발제자 제안에 대한 짧은 소견

국내에서 크라우드펀딩 모델은 2가지의 중첩적 특이성을 갖는다. 플랫폼 종속성과 이념 의존성이다. 중첩적 특이성이라는 의미는 플랫폼의 종속성이 이념적 의존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서다. 카카오의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스토리펀딩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방향성에 장기적으로 동조되기 어려운 상업 플랫폼이다. 저널리즘 조직이 이 플랫폼에 의존할 경우, 플랫폼의 정책 변화나 알고리즘에 따라 수익성이 좌우되는 종속성을 낳게 된다. 뿐만 아니라 스토리펀딩은 정치적 리스크를 회피하려는 포털의 비즈니스적 속성에서 자유롭지도 않다.

단발적 프로젝트로 지속가능한 수익모델로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가볍게 여겨선 안된다. 송진·김균수(2018)는 “크라우드펀딩이 일회성 이벤트를 위한 종자돈을 모으는데 유용할 수 있으나, 지속적으로 고정적인 뉴스 제작을 위한 비용 마련을 위한 적절한 방법이 아닐 수도 있다는 회의론적 시각을 염두에 두고 향후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참고 문헌

  • 권순모, 장혜지. (2018). 20대 Facebook 사용자들의 경험을 통한 소셜 미디어 상의 사용자 가치 파악. 한국HCI학회 학술대회, 824-830.
  • 송진, 김균수. (2018). 크라우드펀딩 저널리즘 콘텐츠 특성과 성공요인에 대한 연구. 한국언론학보, 62(1), 36-68.
  • 신동희, 김희경. (2015). 사용자 경험 기반 스토리두잉의 작동원리에 관한 연구. 한국디지털콘텐츠학회 논문지, 16(3), 425-436.
  • Hansen, Goligoski. (2018). Guide to Audience Revenue and Engagement. Tow Center For Digital Journalism.

  1. 기부와 후원은 엄밀한 의미에서 구분될 필요가 있다. 기부가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면 후원은 그 반대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