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빠르고 영리했다. 한국 정치의 흐름을 재빨리 분석해 차기 정권을 대비했고 아울러 향후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다양한 후보들에 실탄을 공급하는 등 문어발식 지원을 통해 보험까지 들어놓는 치밀함을 보였다. 삼성의 대(對)한국 지배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이번에 공개된 안기부 X파일은 삼성의 한국 지배전략을 분명하게 확인시켜줬다는 점에서 매우 주목할 만하다. 그간 삼성은 다양한 상징조작을 통해 건전하고 생산적인 이미지를 극대화해왔다. 국내 최고액을 자랑하는 기부액, 문화·예술·체육계 전반에 대한 후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다양한 프로그램 추진은 삼성이라는 추악한 자본의 포장전략이었던 것이다.

특히 불황기를 틈타 이른바 국민기업론을 들먹이며 애국심을 조장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순이익 달성은 삼성이 한국경제를 지탱하는 유일한 경제주체인 것처럼 인식케 하는 중요한 팩트로 기능했다. 이는 삼성이 기침을 하면 한국이 흔들린다는 감성적 사고를 확산시켰고, 삼성없는 한국은 더 이상 상상할 수 없다는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삼성에 대한 반대는 매국노로 낙힌찍히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는 고대 사태 당시 여론의 반응이 잘 드러내주고 있다. 이 당시 삼성은 삼성에 대한 반대세력은 1%에 불과하다고 비하했고, 그러나 이마저도 끌어안겠다며 넓은 아량을 과시하며 결과적 승자로 등극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이면으로는 추악한 방식을 통해 정치와 사회, 경제를 장악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고위직 공무원과 유망 법조인을 속속 긁어모았다. 이를 강력한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법적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국가정책을 주무르기까지 했다.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한때 후퇴시킨 건 삼성의 힘이 작용한 탓이었고 금산법 개정 과정에서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든 쪽도 사실 삼성이었다.

이번 X파일의 공개는 삼성의 한국 지배전략이 오랫동안 꾸준히 치밀하게 진행돼 왔음을 암시하고 있다. 삼성의, 삼성에 의한, 삼성을 위한 공화국을 건설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존재하고 있다는 얘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마치 1800년대 후반 자본권력이 미국을 좌지우지하던 때를 연상케 한다. 링컨과 헤이스 대통령 시절, 존 록펠러와 모건, 앤드류 카네기, 제임스 멜론, 필립 아모르 등 거대 자본이 국가권력을 뒤흔들던 당시, 정치권력은 기업의 행위를 방해하는 시민의 권리를 제한하는데 앞장섰다. 가장 대표적인 지방이 미국의 뉴저지와 델라웨어 주의회였다.

당시 이러한 자본권력의 득세를 지켜보던 링컨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한탄했다.

“기업들은 마침내 권좌에 올랐다. 뒤이어 고위직의 부패시대가 도래할 것이고, 돈의 힘이 인간에게 편견을 전파하여 부는 극소수의 손안에 통합될 것이다. 공화제가 멸망하는 그날까지 자신의 영토를 더욱 증대시키고자 노력할 것이다.”

링컨 대통령이 예측은 들어맞았고 30~40년 뒤 경제 대공황으로 이어졌다. 자본의 시대의 종착역이 바로 공급과잉에 따른 경제 파탄이었던 것이다.

삼성의 한국지배전략이 만약 실현될 경우, 그 결과는 명약관화하다. 삼성의 이윤추구에 걸림돌이 되는 각종 규제는 철폐될 것이고, 시민의 권리도 박탈당할 것이다. 그간 이러한 조짐은 끊임없이 발견돼 왔는데 앞으론 법적으로 보장받게 될지도 모른다. 무노조 경영에 대한 사회적 찬미가 들끓을 것이고 노동자의 노동 3권은 크게 위축될 것이 분명하다.

이윤추구를 위한 고용의 유연성, 다시말해 비정규직의 남용과 양산은 삼성을 위해 국가적으로 정당화될 것이고, 이를 상식화시키는 다양한 판례가 만들어 질 수도 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민주주의의 후퇴다. 삼성이라는 자본권력에 의해 정치권력이 종속되는 기이한 형태의 정치구조가 형성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약자 혹은 노동자의 이해는 의회를 통해 대변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또한 실질적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사회적 시민권은 점차 뒷걸음질 칠 것이다. 삼성을 위한 성장논리에 분배담론은 설자리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시민권의 박탈은 시민의 정치적 냉소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함으로써 정치적 참여를 거부하는 반정치적 정서를 생산해냄으로써 정치의 종말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한마디로 정치의 위기가 도래한다는 말이다.

지금 우리가 삼성의 한국지배 프로젝트를 직시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군사독재 이후 진행된 민주화가 자칫 삼성이라는 자본권력의 독재로 대체되지 않도록 견제와 감시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87년 6월 항쟁이라는 민중의 혁명적 요구가 불과 20년만에 수포로 돌아가는 상황은 반드시 차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