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 시험

리차드 세넷은 ‘투게더’에서 대화적 대화(dialogic coversation)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그리고 그 대칭점에 합의에 이르는 대화법을 의미하는 변증법적 대화를 위치시켰다. 대화적 대화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합의를 공유하는 데까지 도달하지는 못하더라도 의견을 주고 받으면서 사람들이 자신들의 견해를 인식하게 되고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대화다. 세넷은 무엇보다 대화적 대화가 가능하려면 “단정하는 태도를 삼가는 것”(세넷, 2013 ; p.54)이라고 했다.

세넷이 대화적 대화를 책 전체에서 강조하는 이유는 협력 때문이다. 투게더 자체가 공동체의 협력을 위해 우리가 배워야 할 팁을 현란한 수사와 문자, 해박한 지식으로 표현한 수작이다. 협력과 조직화를 위해 세넷이 진보 진영에게 던지는 메시지기도 하다.

요즘 들어 많은 이들이 대화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또는 그런 상황 앞에 자주 마주하게 된다고 털어놓는다. 나는 그간 의식적으로 의도적으로 누군가와 대화할 때, 단정적 표현을 피하기 위해 ‘생각한다’라는 말꼬리를 붙이기 위해 노력해왔다. 벌써 수년째지만 다른 생각, 단정적 표현을 만나면 이내 흐트러지곤 했다.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목에 핏대 세우며 단정적으로 주장을 펴는 습관, 반박을 위해 거친 톤을 동원하며 쏘아붙이는 화법. 이 모든 나의 그릇된 대화 습관들이 세넷이 말한 대화를 막는, 그래서 협력을 방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반성한다.

리차드 세넷은 팁으로 공감보다는 ‘감정이입’을 주문했다. 공감은 감정잉입에 비해 더 강한 감정이이긴 하다. 하지만 감정이입은 강력한 실천이다(세넷, 2013 ; p.51). 대화적 대화를 위해 가정법을 써보라는 제안이다. “아마 나라면” “내가 너라면 이렇게” 등의 표현으로 화법을 변화시킬 것을 제안한다. 그것이 연대를 위한 길이고 협력을 복원하는 대화법이라고 할 수 있다.

대화적 대화가 협력의 회복 수단이라면 ‘반복의 재구성’은 장인 정신의 복원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세넷이 언급했다시피 리눅스 등 오픈소스 커뮤니티는 그리스 장인 공동체인 데미오에르고미와 속성을 공유한다. 일의 목적과 내용이 혼연일체를 이루고 일한다는 것 자체가 주는 만족이 그들이 받는 보상이라는 점에서 두 커뮤니티는 닮아있다(세넷, 2010).

리눅스 등 오픈소스 커뮤니티의 작업 방식을 면밀히 살펴보면 반복된 작업이 목적과 수단에 갇히는 폐쇄적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나있다. 오히려 수단과 목적이 뒤섞이고 문제를 푸는 작업과 문제를 발견하는 작업이 반복 작업의 토양 위에서 뒤섞이며 확장돼있다. 일반적으로 오픈소스 커뮤니티에 기여하는 단계는 첫 번째 버그 보고, 오타 수정과 같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의 수행이다. 단순히 코드를 다루는 실력이 탁월하다는 이유만으로 곧장 소스 코드를 수정할 수 있는 마스터 등급인 커미터(committer)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커뮤니티 규범의 존중과 애정의 승인이 반드시 선행된다.

김용욱 GDG(Google Developer Group) 안드로이드코리아 운영자는 “커뮤니티에선 코드 줄바꿈이나 들여쓰기, 오타 수정, 버그 보고처럼 어지러운 코드를 정리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조금 귀찮아 보이고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개발자에게 분명 도움이 주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여성개발자모임터 회장이자 빅데이터 오픈소스에 기여한 전수현 개발자도 “코드를 수정하지 않아도 사용자 포럼에 오류만 보고해도 커뮤니티 안에서 이름을 알릴 수 있다”고 말한다. 반복 작업이 협력의 커뮤니티 속에서 새로운 문제의 발견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강조한 대목이다. 오픈소스 커뮤니티처럼 목적의 하위 단계로서 반복이 아니라 생산적 개선과 문제의 발견으로서 반복이 재구성될 때 장인 정신의 복원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저항의 노출‘과 물성으로의 회귀는 두뇌 기능의 회복 프로그램이 할 수 있다. 기계화, 자동화는 두뇌와 손의 기능 회복에 가장 큰 장애 요인이다. 세넷의 CAD의 사례를 들며 “CAD는 건축설계에서 인간의 경험적 지각 능력을 후퇴시키며 광범위하게 오용되고 있다”라고 그것의 위험성을 기술했다.(세넷, 2010 ; p.74) 기계화가 던진 고민거리, 즉 스킬의 굴절 우려한 것이다. 이는 컴퓨터가 스스로 반복적으로 학습하는 머신러닝의 시대엔 더 큰 골칫거리이자 사회적 문제로 자리잡을 개연성이 크다.

자동화가 진전될수록 그 반작용으로서 물성으로의 회귀와 저항과의 투쟁을 의미하는 메이커 문화는 점차 확산되고 있다. 다시 말해 자동화가 두뇌 기능의 종말을 예고하는 자본주의적 경고라면 메이커문화는 두뇌의 존속과 장인의 시대를 복원하기 위한 발전적 회귀 흐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메이커 문화는 저항→상상→인내→저항의 대상과 동일시라는 ‘장인되기‘의 선순환적 과정을 그대로 모사하고 있다. 일상 속에서 저항을 발견하거나 스스로 만들어내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상상을 감행한다. 그리고 인내하고 스스로를 대상에 이입시킨다(세넷, 2010 ; p.356). 메이커페어에 출시된 대부분의 자작물들은 이러한 과정을 거친 끝에 독창성을 인증받는다.

참고 문헌

세넷, 리처드. (2013). 투게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김병화 역. 서울: 현암사
세넷, 리처드. (2010). 장인 : 현대문명이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 김흥식 역. 파주 : 북이십일 21세기북스
Kostakis, V., & Bauwens, M. (2014). Network society and future scenarios for a collaborative economy. Palgrave Macmillan.
Ostrom, E. (1990). Governing the commons. Cambridge university press. 윤홍근·안도경 옮김. 2010. 공유의 비극을 넘어: 공유지 관리를 위한 제도의 진화. 랜덤하우스코리아.
Sholz, T. (2016). Platform Cooperativism: Challenging the Corporate Sharing Economy. Rosa Luxemburg Stiftung.
Wark, M. Digital Labor and the Anthropocene. DIS Magazine, accessed November 24, 2015, dismaga- zi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