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와 인식의 폐쇄

월터 옹은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에서 인쇄가 인식의 폐쇄를 부추긴다고 썼다(Ong. 1983/1995, 210). “텍스트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 지어지고 어떤 완성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감각”을 인쇄가 불러온다는 의미에서다. 이미 경험했듯, 인쇄된 책, 인쇄된 신문은 그 미디엄 안에서 완결돼야 하고 완성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사고는 인쇄된 지면 위 격리된 채로 남게 된다. 구술과 가까운 필사본과 문자성과 흡착된 인쇄본은 그래서 같은 듯 다르다. 전자를 구술의 재현으로 본다면, 후자는 문자성의 창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캐서린 헤일스는 ‘나의 어머니는 컴퓨터였다’에서 말하기, 글쓰기, 코드의 진화 매커니즘을 재현와 창발의 연속으로 봤다. 재현이 연속을 의미한다면, 창발은 이전과의 단절을 상징한다. 언어의 진화 경로는 이전 단계를 수용한 뒤 독립적인 형태로 진화해나간다는 것이다. 헤일스는 이 과정을 “각각의 후발체제는 예전에는 없는 특징들을 도입한다”라고 표현했다.

이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굳이 서문에 꺼내는 이유는 이렇다. 코드로 표상되는 디지털은 문자(인쇄)의 재현에서 시작하지만 결국엔 스스로의 진화 모델(창발적 특성)을 구축하게 된다. 인터넷 초기, 언론사들은 디지털이라는 캔버스 위에 인쇄 신문을 재현하는데 주력했다. 그러기를 20여년이 지난 지금, 디지털은 그 자신만의 언어적 문법으로 새로운 창발적 스토리 모델을 만들어냈다. 그것이 디지털 스토리텔링이라는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다양한 문법의 스토리텔링이다.

인쇄와 단절을 넘어선 디지털…스토리텔링은?

이미 디지털은 인쇄에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특징을 도입했다Hayles. 2010/2016, 94). 디지털을 구성하는 코드 체제에서 인쇄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컴파일링이라는 특성이 발견되는 것처럼 말이다.

"말하기에서 글쓰기로 코드로의 진보에서 각각의 후발 체제는 예전에는 없는 특징들을 도입한다. 그라마톨로지에서 데리다는 글쓰기를 단지 말하기의 패턴의 전사로 이해하는 것을 적절치 않다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알파벳 글쓰기에서 단어들 사이의 여백을 거듭 언급한다. 글쓰기는 말하기를 넘어서므로 이 이전 체제 속에 압축될 수 없다고 그는 주장한다." 

스토리텔링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말하기 시대의 스토리와 글쓰기 시대의 스토리가 단절을 경험했듯, 디지털로 상징되는 코드 시대의 스토리는 인쇄 시대의 스토리와 단절되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디지털은 자신만의 독창적 기법을 구축했고 ‘진화의 가속도’도 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론사들은 여전히 예전에 없던 특징을 주목하는데 인색하다. 연속성에 대한 인식의 관성이 코드 시대의 스토리 구성에 대한 상상을 제약한다. 단절을 인정하지 못하거나 단절을 틀린 것으로 단정한다. 생산자가 터잡고 있는 공간, 환경의 특수성과 맥락은 재현에서 창발로 나아가는 과정을 지체시키거나 앞당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언론은 시공간적 지체를 끊임 없이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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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에서 구술성과 문자성의 통합

다시 강조하지만 디지털은 인쇄 중심의 글쓰기 문화라는 레거시 시스템을 극복했다. 과감한 단절과 생산적인 단절을 통해서 말이다. 단절은 결별과 배제의 상태는 아니다. 이전 체제와 후발 체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있다. 헤일스는 오히려 두 체제의 조합이 “훨씬 더 강력하다”고 말한다(Hayles. 2010/2016, 51~52)

"예를 들어 장 보드리야르가 순수하게 디지털적이라고 오해한 것으로 유명한 음악 CD는 음파의 형태학을 포착하기 위해 아날로그 프로세스(마이크로폰이나 기타 아날로그 장비들과 같은)에 의존한다. - 중략 - 디지털 재현은 정확한 오류 제어, 극단적인 분산, 재조합을 가능케 해주는 반면, 아날로그 프로세스는 다르게 구현된 실재들 간에 정보 패턴을 전송하는 능력을 비롯하여 연속체로서의 이점이 있다." 

인쇄라는 아날로그와 코드라는 디지털은 서로 보완적인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둘의 “창발적 재조직”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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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발적 재조직은 그런 의미에서 통합적이다. 디지털은 아날로그와 상호작용하면서 한단계 더 깊은 단절을 낳고 한 단계 더 높은 창발적 재조직을 탄생시킨다. 오로지 디지털 자신만의 모습으로 창발되는 것이 아니라 이전 체제와의 보완 속에서 탈피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는 의미다.

초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의 UI 디자인 조류에서도 이러한 흐름을 포착할 수 있다. 특히 모바일 UI 사조에서 중요한 축을 형성했던 스큐어모피즘과 미니멀리즘의 관계는 단절/재현과 창발의 관계로 해석이 가능하다. 한때 물리적 사물의 전사를 초점을 맞춘 스큐어모피즘은 애플 등을 중심으로 모바일 UI의 대세로 굳어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스큐어모피즘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거치면서 디지털 특유의 미니멀리즘으로 단절 이후의 상태를 구성해내갔다. 지금 대부분의 모바일 UI가 미니멀리즘의 사조 속에서 변형이 일어나지만, 이 단계를 밟기까지는 아날로그적 감성의 재현과 재재현을 거쳐야만 했다. 물론 지금도 이러한 경향성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디지털 메커니즘과 아날로그 의식 간의 이러한 상호작용은 매일 우리 주변에서 숱하게 일어나며 여러 레벨의 복잡성에 걸쳐 창발적 재조직이라는 결과를 낳곤 한다. 예를 들어 디지털 기술이 군사 전략가의 의식 속에서 재-재현되어 창발적인 행동을 만들어내고 실행하도록 군부대를 재편하는 토대로 이용되는 경우가 그렇다Hayles. 2010/2016, 52." 

디지털은 그래서 앞선 체제에 열려있고 열려있어야 한다. 구술성과 문자성을 통합하고 상호작용하면서 디지털만의 독립적 속성을 키워갈 수 있다. 최근 영상의 유행이나 디지털 공간 내 구술적 글쓰기의 두드러짐은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지 않을까. AI 스피커를 통해 구술성과 코드성의 통합이 일어나고 가상의 공간에서 구술성과 문자성의 통합이 스노폴이라는 독특한 스토리텔링의 방식을 창안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일단 인쇄의 폐쇄적 관성에서 벗어나, 디지털이라는 공간 위에 구술성과 문자성의 접합을 시도하려는 노력이 지속될 때, 디지털만의 단절 이후의 창발이 열릴 것이라는 생각이다.

참고 문헌

  • Hayles, N. K. (2010). My mother was a computer: Digital subjects and literary text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이경란/송은주 옮김.(2016). 나의 어머니는 컴퓨터였다. 아카넷.
  • Ong, W. J. (1983). Orality and Literacy: The Technologizing of the Word. 이기우/임명진 옮김. (1995).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문예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