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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전문 보기

  • 이 장에서 나는 인터넷을 번영시키고 초능동적인(hyperactive) 미디엄으로 만드는 과잉 활동을 무불 노동(free labor)이라고 명명한다.
  • 이는 문화 경제의 전반적인 특성이며 아직 인정되지는 않고 있지만, 선진 자본주의 사회의 중요 가치의 원천이다.
  • 사회 공장(Social Factory)이라고 부른 것 사이의 연결성을 강조할 것이다. 사회 공장은 ‘작업의 과정들이 공장으로부터 사회로 이행함으로써 진실로 복잡한 기계가 작동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동시에 자발적으로 제공되고 무보수이며 즐기면서 착취되는 네트에서의 무가 노동은 웹사이트 제작, 소프트웨어 패키지 개조, 메일링 리스트의 검토 및 참여 그리고 가상공간 건설의 행위를 포함한다.
  • 해러웨이가 선언에서 묘사하는 ‘지배의 정보학’은 분명히 사이버네틱스, 노동 그리고 자본 간의 관계에 대한 내용으로 점철되고 있다.
  • 인터넷의 확장은 노동력 유연성의 점증, 끊임없는 재교육, 프리랜스 노동, 그리고 보충 같은 일들의 확산 등의 현 경향들에 대해 이념적, 물질적 지지를 제공한다.
  • 나는 인터넷이 자율주의자들의 사회적 공장에 연결되는 방식을 보여주려 한다. 나는 아웃터넷이 노동, 문화, 권력이라는 보다 큰 흐름으로 인터넷을 포위하고 또한 그들과 연결하는 방식을 살펴볼 것이다.
  • 가치 생산은 점증적으로 직접적인 생산 과정 외부에 있는 생산 요소 및 사회적 부의 포획과 관련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 생산과 소비, 일과 문화적 표현 사이의 구분이 점점 흐려진다고 해서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적 소외된 노동자의 재형성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경제

  • 디지털 경제라는 용어는 한편으로는 포스트모던 문화경제와 다른 한편으로는 정보산업에 교차하는 형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 리차드 바브룩은 디지털 경제는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새로운 유형의 노동자들의 출현으로 특징화된다고 정의한다.
  • 바브룩은 거리를 극복한 협력이나 화폐없는 교환이 지배하는 현상으로부터 알 수 있듯이 이것은 하나의 실행가능하고 대안적인 정치적, 경제적 모델이라는 것이다.
  • 바브룩에 따르면 디지털 경제는 혼합 경제다. 그것은 공적 요소(아르파넷), 시장 주도적 요소, 그리고 선물경제적 요소를 포함한다.
  • 마르크스-헤겔의 관점에서 바브룩은 하이테크 선물 경제가 내부로부터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 궁긍적으로 포틀래치와 경제는 화해불가능하며, 시장경제는 언제나 선물 경제의 공통적인 거주지를 재사유화하려고 위협하고 있다.
  • 디지털 경제에 대해 사고할 수 있는 논쟁의 무대를 제공해주려는 초기의 이러한 시도는 하이테크 선물 경제가 자본주의에 대해 지니는 자율성을 과도하게 강조한다.
  • 무불노동의 제공이란 인터넷의 디지털 경제를 넘어서 경제 전반에서의 가치 창출에 근본적인 계기를 이룬다.
  • 무가 노동은 바로 이러한 유식한 문화소비가 기쁘게 포용되는 동시에 종종 대담하게 착취되는 과잉의 생산 활동으로 번역되는 국면이다.
  • 지식 생산은 협력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생산을 위해 지식 노동자는 개방된 조직 구조를 필요로 한다. 이것이 바브룩이 선물경제라고 정의한 바로 그것이다.(p.5)
  • 관리 영역에서의 새로운 도전은 우선 조직을 그들에게 마케팅함으로써 그들의 자산을 회유하고 보유하는 것이고, 둘째, 그러한 노동자들이 자신의 지식을 효율적으로 적용하고 향상시킬 수 있도록 창의적이고 개방적인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 디지털 경제에서 노동자는 노동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고 자신의 두뇌로부터 소외되지 않는 생산 수단을 발견한다.
  • 디지털 경제는 가치와 무가의 문화적, 정동적 노동을 실험하는 중요한 영역이다.
  • 기업화는 진정성의 문화에 침투하는 자본에 관한 것이 아니라 집합적인 노동을 화폐의 흐름으로 유통시키는 내재적 과정이며 자본주의적 비즈니스 실행 안에서의 구조화인 것이다.
  • 이러한 운동(자발적 참여)들 안에서의 문화, 문화산업, 그리고 노동의 관계는 자본주의적 통합의 개념이 의미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지식 계급과 비물질 노동

(9페이지 하단부터)

  • 인터넷의 정치적 잠재성에 대한 모든 판단은 탈중심적인 정보 접속을 가능하도록 하는 인터넷의 과시적으로 과장된 능력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누가 어떻게 이용하느냐라는 질문에 연관된다.
  • 우리가 지식 노동자가 노동의 전위라고 증명할 수 있다면 네트는 저항의 장소가 된다. 만약에 우리가 지식노동자가 정보화된 사회에서 권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면 중간 계급에게 넷이란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는 확장된 공동체이다.
  • 이러한 방식의 계급 이해는 노동력 전반을 동원하는 문화와 화폐의 흐름까지도 고착시킨다.
  • 비물질 노동이란 보통 ‘노동’으로 인식되지 않는 일련의 활동들, 환언한다면 문화적, 예술적인 기준, 패션, 취향, 소비자 규범 그리고 보다 전략적으로는 여론을 정의하고 고정하는 일에 관련된 유형의 활동들을 가리킨다.
  • 비물질 노동은 지식 노동자들과 달리 특정한 계급의 형성에 한정되지 않는다. (p.10)
  • 예를 들어, 1990년대 각국 정부의 교육에 대한 강박적인 강조는 이러한 가상성이 소멸하거나 현 권력 구조에서는 허용되지 않을 곳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시도로 읽을 수 있다.
  • 포스트포디즘과 달리 자신의 자율주의적인 본래 입장에 맞추어 라짜라또는 비물질 노동을 자본주의의 새로운 역사적 단계에 순수하게 기능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 노동력의 집합적인 질로서 비물질 노동은 상이한 강도를 가진 사회적 육체에 스며든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 비록 그 이익이 기성 기업들에 의해 불균등하게 전유된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생산물들이 가능한 이유는 집합적인 문화 노동의 형식 덕분인 것이다.
  • 인터넷은 비물질 노동 네트워크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그들의 결합이 집합적 총체로 되는 것을 가속화한다. 인터넷에서 비물질 노동의 생산력이란 메일링 리스트, 웹사이트, 채팅창에 글쓰기, 읽기, 관리하기와 참여하기의 일들을 포함한다.
  • 추상 노동, 곧 마르크스가 생산물의 유용한 질과 무관한 가치 생산을 위한 시간의 투여로 정의한 개념의 외부에 해당한다.
  • 이 지점에서 두 가지 욕망들의 합치는 끝난다. 자본은 이러한 가상성들의 열림과 가치화의 과정을 계속 통제하길 원한다. 그렇다면 넷에서 문화적, 기술적, 정동적 생산의 상대적 풍부성이란 자유롭게 떠다니는 후기산업적 유토피아로 존재하지 않는다. 전적으로 상호적으로 후기 자본주의를 형성하는 상호 작용 안에 있는 것이다.(p.11)

집합적인 마음

  •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비물질적인 노동의 집합적 성격은 사이버자유주의자들(cyberlibertarian)의 유토피아적인 진술에 의해 찬미됐다.
  • (케빈 켈리) 인터넷은 연결된 인간 마음들의 자기 조직적이고 무한히 생산적인 행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의 물적인 증거인 것이다.
  • 피에르 레비는 “자기 지식과 집합적 사고의 범위를 결합하고 확대하는” 신인간주의를 주장한다. 레비에 따르면 우리는 코기토라는 단일 사고에 기초한 데카르트 모델로부터 집합적 또는 복수적인 코기타무스(우리는 생각한다)로 이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 켈리와 마찬가지로 레비는 디지털화에 관련하여 패권적인 담론을 지배하는 경쟁과 유연성이라는 일반적 수사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 노동자를 공장으로부터 추방한 사이버네틱스 1세대와 달리 컴퓨터 네트워크는 지식 경제의 진정한 가치 창출자로서 인간 지능의 고유한 가치를 강조한다. 경제가 점증적으로 창의적인 주체성 형성에 의존하게 됨에 따라, 이러한 생산이 신인간주의를 생성하고 인간의 창의적 잠재성의 새로운 중심성을 창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 사이버문화적인 사유의 자기조직적이고 집합적인 지능은 네트워크로 연결된 비물질 노동의 존재를 포획하는 반면, 자본 작동 분석 전반에 있어서는 번영을 거듭했다. 자본은 결국 그 안에서 집합 지능이 물질화되는 비자연적 환경이다.(p.13)
  • 아우또노미아 오뻬라이아라는 포스트 그람시적 마르크스주의로 알려진 이탈리아 저자들은 공장 이후의 노동에 의해 전개되어 온 변화에 집중함으로써 이 관계에 일관적으로 개입해왔다. 자기조직적인 집합지능이란 개념은 그들의 핵심적인 개념들 중의 하나인 일반 지성처럼 낯설게 보이지는 않는다.
  • 자율주의자들은 마르크스가 전적으로 일반 지성을 고정 자본과 동일시했고 그럼으로써 일반 지성(또는 주요한 생산력으로서의 지식)이 기계들의 상호 접합을 매개하는 구체적 주체들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했다고 주장한다.
  • 일반지성은 고정자본과 살아있는 노동의 결합이다. 우리가 가장 최근의 기계인 인터넷, 컴퓨터 네트워크 일반을 본다면 일반 지성을 건재하면서 살아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 자율주의자들은 일반 지성의 결정적 접합으로서 기능하는 살아있는 노동 대중지성(mass intellectuality)을 대비시켜왔다. 대중지성은 살아있는 주체들의 비가시적 지식과 언어적 협력의 저장소다.
  • 집합지능이 경영학 문헌과 마르크스주의 문헌 양쪽에서 모두 넘쳐나는 현상은 정보화된 사회의 노동의 특질에 대한 공통적인 직관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 지식노동이란 본연적으로 집합적이다. 그것은 언제나 집합적이고 사회적인 지식 생산의 결과물이다.
  • 자본의 문제는 어떻게 이 풍부하되 약간은 추적하기 어려운 지형에서 가능한 한 커다란 가치를 추출할 수 있을까라는 점에 있다.1
  • 마르크스가 서술했고, 페미니즘과 포스트 그람시주의적 자율주의자들이 강조했듯이, 노동의 집합적인 측면에 대한 인정은 노동과 고용을 동일시하는 시각에 대한 거부를 뜻한다. 노동은 지불 노동과 동일하지 않다.
  • 노동이 고용과 동등하지 않음에 대한 강조는 역시 무가의 정동적이고 문화적인 노동이 오래된 그리고 새로운 미디어 산업에 대해 지니는 중요성을 승인하는 것이다.(p.15)

단명하는 상품들과 무가 노동

  •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의 연속과 단절) 연속은 그들이 생산적 주체인 공중, 이용자에 공통적으로 의존한다는 사실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차이는 생산 양식 및 권력, 지식이 작동하는 방법에 있다.
  • 텔리비전과 인쇄 미디어는 시청자/독자의 무가 노동을 풍부하게 이용할 뿐 아니라 그것의 기여를 경제적 조직과 도덕적 판단이라는 관점에서 보다 확고하게 구조화하는 경향이 있다.
  • 이들은(초기 인터넷 이용자) 전자상거래와 점진적인 사유화가 인터넷의 자유 경제, 즉 리차드 바브룩이 선물경제라고 묘사했던 교환 경제를 훼손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그것의 조직화된 구조에 근본적인 커뮤니케이션 양식인 네트워크 바깥에 영원히 머무르리라고는 거의 생각할 수조차 없다.
  • 인터넷이 아직 안정화되지 않았을 수는 있지만, 디지털 경제가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빠르고 가시적인 생산 영역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P.16)
  • 네트에서의 상품은 실재 사회의 필요의 한계와 맺는 관계에서 물질적이지 않고 과잉적이다.2
  • 상품의 사라짐이란 물질적인 사라짐이 아니라 그 이면에서 벌어지는 바, 그것이 노동의 질에 가시적으로 종속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 가치화의 과정은 문자 그대로 상품을 활성화하는 노동의 질을 전면에 내세울 때 발생한다.
  • 인터넷은 연속적이고 업데이트 될 수 있는 노동으로부터 가치를 추출하며 매우 노동집약적이다. 당신은 관심을 유지시키고 쓸모없는 것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웹사이트를 끊임없이 업데이트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역시 프러그래머, 디자이너 그리고 노동자의 집중적인 집합노동에 의해 추진된다.(p.17)
  • 결과적으로 미디엄으로서 인터넷의 지속가능성은 거대한 노동량에 의존하며 그 중 일부만이 벤처 자본주의의 변덕스러운 논리에 의해 과잉보상될 뿐이다. 인터넷 전체를 유지하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거대한 노동의 양 중에서 상당한 부분이 무불 노동이리라고 우리는 추측할 수 있다. ** 오픈소스 협력 노동**
  • 그러나 무가 노동이 반드시 착취된 노동인 것은 아니다.
  • 인터넷 기술자 팅커스(tinkers)가 무가 노동에 의존한 오픈소스 운동은 디지털 경제 내 구조화된 경향에 대한 또 하나의 증거이다.
  • 여전히 오픈소스 운동은 파에서 묘사한 보다 분산적인 이용자 운동에 비해 훨씬 더 크게 긍정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이는 그것이 야기한 논쟁과 그것이 더 큰 범위의 디지털 경제와 가지는 관계와 관련하여 탐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
  • 리차드 바브룩은 넷스케이프의 이행을 미디엄의 아키텍처에 내재한 권력의 신호로 보며, 축하를 표했다. 그러나 존 호바쓰와 같은 이들은 이러한 낙관주의에 동의하지 않았다.(P.20)
  • 호바쓰는 “넷스케이프의 이행이란 결코 인터넷 선물 경제의 유효성을 입증하는 현상이 아니라 셰어웨어와 프리웨어가 넷스케이프가 대표하는 거물들에 겨룰 수 있는 수단이 되어 주었던 독립 생산자들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리라고 주장했다.
  • 넷스케이프의 해고를 바브룩의 선물 겨제의 낙관주의에 대립하는 증거로서 제시하는 일이 흥미로울 수는 있지만 그보다는 오픈소스 같은 이상주의적 운동과 오픈소스 기업에 투자한 벤처 마니아 사이의 관계가 점차 견고해지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더 생산적일 수 있다.
  • 말하자면 이러한 과정은 자본의 외부에서 만들어진 뒤 자본에 의해 재전유되는 것이 아니라 포디즘의 위기 동안 그 안에서 노동과 자본의 관계가 상호적으로 형성되고 엉키며 심대하게 강화되어온 복잡한 역사의 결과인 것이다.

네트와 세트

  • 새로운 웹은 거대 행위자들과 이용자들로 하여금 노동하도록 만드는 새로운 방법들로 채워졌다.3
  • 추상적으로 볼 때, 피플쇼(리얼리티 텔리비전 쇼)가 시청자들의 창발성에 의존하는 방식과 웹사이트가 이용자들의 투입에 의존하는 방식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새로운 결론 : 2012년 2월의 무가 노동 해방

  • 무불 노동의 재구성
    • 명제1 : 인터넷의 미래가 이용자의 능동적인 참여의 중심성에 의해 주도되리라는 것
    • 명제2 : 그러한 과정이 자율주의적인 마르크스주의의 사회적 공장에 대한 논제와 그와 함께 제시된 비물질 노동 및 사회적 공장에 관한 개념들에 의해 생산적으로 설명될 수 있으리란 점이다
  • 기업들의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 구성을 보면, 실제 지불 노동의 미미한 비율에 반해, 무가노동은 거대한 잉여가치를 차지한다. 더욱이 자발적 노동, 지불받지 않는 노동, 그리고 부유한 자와 그렇지 않은 모든 이들 간의 격차는 현대 경제 일반의 현저한 특징이 되어가고 있다.
  • 디지털 경제 내의 이용자 참여에 대한 요청은 확고부동한 사회경제적 현실에 대한 경험적인 기술이 아니라 정치적인 선택이다.(p.24)
  • 이는 수행된 노동에 대해 지불되는 급여가 더이상 현대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생산된 부를 배분하기 위한 적합한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 그렇다면, 자본주의 경제의 경제적 범위 안에서 살아있는 노동은 이중으로 착취되고 있다
  • 무불노동의 해방에 대한 요구는 다음의 두 가지를 요구하는 일이 된다.
    • 그 이익은 실제로 그것을 창출한 이들에게 환원돼야 한다는 것
    • 소셜네트워킹플랫폼은 탈사유화 되어야 한다는 것
  • 참여를 구조화하는 프로토콜과 다이아그램에 접근하고 변경하는 자유로서 이용자 데이터 소유권은 그것의 정당한 소유자들에게 반환되어야 한다.(p.24)
  • 무불노동에 의해 발생되는 부는 사회적인 것이기에 그것의 반환 양식 또한 사회적이어야 하며, 이는 말하자면 새로운 형태의 복지(주택, 건강, 교육, 지식, 기술 등의 보다 큰 투자에 이르리까지)처럼 부를 공통적인 것의 재생산에 투자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1. 왜 그 전에는 자본이 집합지능의 가치 추출에 주목하지 않았을까. 그 전에도 그랬을까. 

  2. o2o를 이 관점에서 바라보면 어떤 의미를 도출해낼 수 있을까? 네트에서의 상품이 과잉이라는 의미? 

  3. 페이스북이 구상하는 새로운 웹이 어쩌면 그런 모습일 수도 있다. 팀 버너스 리의 경고와도 일맥상통하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