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정치커뮤니케이션과 민주주의를 연구하는 사라 오티스(Sarah Oated) 매릴랜드대 필립 메릴 저널리즘 학부 교수의 블로그 포스트를 번역한 것입니다. 물론 그의 허락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선거일 다음 날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도중, 방송사들이 중계를 끊어버린 사건이 있었죠. 이를 바라보는 국내 기자들의 관점이나 의견은 조금씩 엇갈렸습니다. 이것의 의미를 설명해주는 좋은 글이라고 판단이 되어서 번역을 하게 됐습니다.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20201106500884-1

방송사들은 2020년 선거에서 투표가 마감된 다음날, 트럼프의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혁명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대통령을 공직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투표가 몰리자(투표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트럼프는 아주 조잡한 증거에 근거한 선거 사기에 대해 횡설수설하고 반복적으로 비난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하나둘씩 많은 방송사들이 기자회견 방송을 중단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대신 일부는 스튜디오 아나운서로 돌아와 대통령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트럼프 주도의 허위조작정보라는 엄청난 압력에 시달려왔던 미국 언론의 규범이 완전한 자유지상주의적(libertarian) 가치에서 보다 강력한 감시견의 역할로 전환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는 엄청난 도발 상황에서 일어난 지각변동이지만 미국 언론은 새로운 현실에 빠르게 적응을 했습니다.

미국의 미디어는 자유지상주의 시스템에 의해 정의되는데, 시버트(Siebert) 등의 1956년 저서 <언론의 4 이론>(The four Theories of the Press)에서 처음 기술됐습니다. 학자들은 미국이라는 국가가 정보의 흐름에 광고가 후원하는 상업화된 미디어 모델을 육성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국가와 미디어 시스템의 관계를 간략히 설명했습니다. 언론 영역에는 국가로부터의 간섭이 거의 없고 언론의 자유에 대한 광범위한 보호가 있었습니다. 다른 강대국들과 달리 미국은 지배적인 국가(state)나 공영방송 부문이 없습니다.

시버트 외 연구원의 작업은 확실히 오래됐지만, 자유지상주의 언론의 중심 원칙은 여전히 미국에 남아 있습니다. 케이블의 출현과 이후 인터넷에 의한 정보 폭발은 "수용자가 결정하게 하라"는 개념을 한계점으로 늘려놨습니다. 트럼프 정부 하의 엄청난 허위조작정보 증가는 이 제도를 더욱 뒤틀었습니다. 대통령은 종종 음모론을 밀어붙이거나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COVID-19가 심각하지 않거나 표백제를 주입하면 바이러스가 죽는다.) 폭스뉴스에 정박해 있는 우파 에코챔버는 잘 속는 우파 성향의 수용자들에게 상당한 증폭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2017년 취임식 때, 대변인이 취임식 참석자 규모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했던 당시 취임식은, 여전히 자유지상주의 원칙에 전념해온 미국 언론을 4년간의 혼란으로 불러일으켰습니다. 미디어 자유지상주의의 개념은 저널리스트들이 정보원을 대중에게 전달할 것을 명령합니다. 문제는 백악관과 같은 주요 정보원이 심각한 저널리즘의 역설로 자리 잡으면서 허위조작정보의 근원(wellspring)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유지상주의 시스템은 그들이 대통령의 말이 부정확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조차도 대중에게 제시해야 한다고 명령했습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백악관의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책임있는 언론사들은 대통령의 말을 취재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들은 정보를 맥락화하고 보도로써 허위조작정보에 맞섬으로써 이 문제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습니다. 불행히도, 이것은 "언론은 가짜이고 너무 비판적"이라는 대통령의 불만을 지지자들에게 전달토록 허락한 동시에 허위조작정보를 증폭시키는 공동 효과(joint effect)를 가져왔습니다.

2020년 선거 다음 날, 3가지 사건이 일어나 자유지상주의 모델을 완전히 꺼버리고 미디어 네트워크가 대통령마저 꺼버리는 게 편안한 시대를 새롭게 열었습니다.

첫번째, 기자들은 게임이 조작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은 자유지상주의적인 미디어 시스템의 기생충이었고 그들이 어떻게 그들이 허위조작정보를 주장할 수 있고 여전히 취재를 받을 수 있는지를 이용했습니다. 달라진 것은 언론인들이 자유지상주의 모델이 미디어는 뉴스를 취재해야 하지, 프로파간다는 피해야 한다는 것을 명령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백악관의 메시지를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프로파간다이지 뉴스가 아니었습니다. 그 TV 네트워크들은 민주주의의 이익을 위해 허위조작정보의 흐름을 중단시키면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것은 결국 언론의 자유지상주의적 모델의 핵심입니다.

보다 실용적으로, 카메라를 끄게 한 두 가지 다른 요인이 있었습니다. 선거가 끝난 저녁 무렵 수학은 트럼프가 레임덕 대통령(이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지만)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하는 증오 캠페인의 타깃인 언론은 그를 두려울 게 훨씬 적었습니다.

게다가, 기자들은 미디어 간 의제설정을 연습해왔습니다. 즉, 한 네트워크가 대통령 중계를 끊어버리는 것을 보고, 그렇게 하는 것에서 해방감을 느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언론 매체가 중단한 것은 아니지만, 국가 정보의 중요한 소스로서 대통령을 민주주의의 이익에 반하는 선전원(propagandist)으로 확고하게 바꿔버린 강력한 선언을 할 만큼은 충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