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2014년 9월6일 '여기자'에 기고에 하기 위해 작성했던 교정 전 원고입니다. 이메일함을 정리하다 발견해서 2021년 4월17일에 여기에 업로드를 해둡니다. 당시의 바이라인도 그대로 표기해뒀습니다.  


이성규 블로터닷넷 기자


디지털 퍼스트의 정의와 역사

디지털 퍼스트는 미디어 관계의 변화를 함축하는 표현이면서 동시에 우선 순위의 새로운 결정을 의미하는 트렌디 한 용어이다. ‘퍼스트’라는 단어는 무엇에 우선인가라는 맥락을 내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그 무엇은 올드 미디어 혹은 기성 미디어를 지칭한다. 디지털 퍼스트는 올드 미디어라는 기술적 레거시를 보유한 미디어에게만 해당하는 용어다.

디지털 퍼스트는 단순히 ‘디지털이 먼저이고 인쇄는 그 뒤’라는 발행 순서의 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으로 파생되는 기사 생산 과정의 변화, 수익 모델의 전환, 조직 구성의 개편, 각종 기술의 재배치를 모두 포함한다. 나이트 재단의 수석 고문인 에릭 뉴턴은 “쿠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매스미디어 시대를 열어젖힌 이래 가장 큰 변화의 시기”라고 디지털 미디어 시대를 정의했다.

디지털 퍼스트가 처음 언급된 시기는 대략 2006년쯤으로 되돌아간다. 당시엔 디지털 퍼스트라는 표현보다는 ‘웹 퍼스트’란 용어가 익숙했다. 모바일 시대가 본격 개화하면서 이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디지털 퍼스트로 바뀐 것뿐이다. 웹 퍼스트라는 용어를 선점한 주인공은 영국의 가디언이었다.  당시 가디언은 하루에 한 번 발행하는 신문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외신과 비즈니스 섹션에서 ‘시차의 괴리’를 좁히겠다는 의도가 컸다. 하루에 한 번 찍어내는 신문은 글로벌로 독자 확장을 꾀하려는 가디언에겐 효율적이지 않은 미디어 플랫폼이었다.

그리고 2011년 디지털 퍼스트 조직으로의 대전환을 선언했다. 불과 5년에 불과했지만 2006년과는 각오가 사뭇 달랐다. 생존의 절박감이 곳곳에 묻어났다. 장기 지속 가능한 재정구조와 디지털 성장에 대응하기 위한 선도적 선택이라는 표현 속에서 고민의 깊이가 읽혀졌다. 전략의 내용도 보다 구체화됐다. 앨런 러스브리저 가디언 편집국장은 이렇게 선언했다. “모든 신문은 디지털 미래를 향한 여정에 있다. 그것이 인쇄를 버린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관심과 상상, 인적/물적 자원을 디지털 미래가 가져올 것으로 보이는 다양한 형식에 더 집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디지털 퍼스트와 종이 그리고 웹

디지털 퍼스트는 올드 미디어의 전략적 미래와 지속가능한 생존의 모색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생산된 조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디지털 퍼스트가 여전히 발행 순서의 교체 정도로 인식되고 있고, 그것의 불가피성에 대한 절박감은 표피적으로만 형성되고 있다. 글을 담는 공간이 종이에서 디지털 웹으로 바뀌었다는 인식만이 주를 이루고 있을 뿐, 종이와 웹의 속성적 차이에 대해선 무관심하다는 얘기다.

1970년대 문서 제작도구의 원형을 개발했던 당시 제록스 파크연구소 학습연구실장 엘런 케이는 ‘마술종이’라는 말로 종이와의 차이를 설명했다(레프 마노비치. 2013).  그는 저작도구로 제작한 디지털 문서는 “단순히 종이를 모방한 것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그가 저작도구를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문서라는 개념은 “기존의 모든 표현적, 예술적 미디어를 위한 플랫폼”이었다. 궁극적으로 모든 콘텐츠를 아우를 수 있는 재매개 기계로서 디지털 웹을 설정했다는 의미다. 레프 마노비치는 말을 일부 변용하면 더이상 오프라인 시대에 존재하던 종이는 21세기 웹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디지털 웹을 종이의 연장으로 접근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충고이기도 하다.

BBC의 사회계급 계산기 화면

디지털 퍼스트는 ‘마술종이’라는 웹의 속성을 이해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종이신문에 쓰여진 텍스트와 이미지를 복제하는 공간으로, 혹은 먼저 담는 그릇쯤으로 디지털 퍼스트 전략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종이신문식 철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웹은 소프트웨어의 수행물이 올려지는 공간이고 소프트웨어가 작동되는 캔버스이다. ‘스노우폴’이나 가디언의 ‘세계대전 다큐멘터리’ 같은 멀티미디어 스토리텔링은 웹 위에서 가동되는 소프트웨어의 수행물이다. BBC의 사회 계층 계산기는 그 자체가 웹에서 구동되는 하나의 소프트웨어다. 마술종이 위에서 현란하게 펼쳐지는 이런 문서의 ‘마법’은 왜 웹이 종이의 연장이 아닌가를 드러내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 기자의 중요성

디지털 퍼스트는 소프트웨어를 다룰 수 있는 인재의 유입을 수반한다. 광고나 사업국뿐 아니라 편집국에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필수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메시지다. 버즈피드, 허핑턴포스트, 복스미디어, 써카와 같은 신생 미디어를 비롯해 뉴욕타임스, 가디언 등 디지털 퍼스트를 꾀하는 세계 유력 언론들은 이미 이러한 흐름에 올라탔다. 편집국 내에 수십 수백명의 엔지니어와 웹 디자이너가 채용돼 디지털 콘텐츠를 직접 생산하고 있다. 이들은 표현 방식이 다른 ‘저널리스트’이지 기자를 보조하는 ‘오퍼레이터’가 아니다. 소프트웨어로, 인포그래픽으로 뉴스를 생산하는 ‘다른 종류’의 기자인 것이다.

여기에 디지털 퍼스트를 위한 조직 변화의 힌트가 존재한다. 기자란 저널리즘을 수행하는 행위자로 ‘의견과 지성을 서로 교환하는 이’로 정의된다. 행위의 수행이 핵심이지 행위의 표현 양식이 저널리스트를 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표현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수식어를 부여하며 ‘방송 기자’, ‘신문 기자’, ‘그래픽 기자’, ‘편집 기자’로 불러왔다. 디지털 시대엔 여기에 ‘인터렉티브 기자’, ‘소프트웨어 기자’, ‘데이터과학 기자’, ‘멀티미디어 기자’ 등이 보태지는 것뿐이다.

Aron Philhofer

디지털 퍼스트는 이러한 새로운 유형의 기자군을 수용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다른 표현 양식으로 저널리즘을 수행하는 행위자들이 편집국으로 속속 유입되면서 디지털 퍼스트의 추동력을 배가시킨다. 가디언이 뉴욕타임스의 인터렉티브팀을 이끌었던 애런 필호퍼(Aron Philhofer)를 영입한 ‘사건’은 왜 디지털 퍼스트 시대에 새로운 유형의 인재가 중요한지를 명확하게 확인시켜준다.

애론 필호퍼는 2006년부터 뉴욕타임스의 디지털 퍼스트를 주도했던 인물로 뉴욕타임스 디지털 전략의 대부분이 그의 손을 거쳐갔다. 2007년 뉴욕타임스 인터렉티브팀을 설립했고 다양한 디지털 스토리텔링 포맷을 개발해 소개했다. 2009년에는 도큐먼트클라우드닷오아르지(Document.org)라는 스타트업을 창업해 언론사의 뉴스 관련 문서를 관리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했다. 최근까지 ‘뉴욕타임스 나우’(NYT NOW) 모바일 앱 개발을 총괄해왔다.

그가 뉴욕타임스 인터렉티브팀을 설립할 2007년 당시 편집국과 IT팀을 포함한 내부 조직은 “우리를 대체하려는 것이냐”며 반발했다. 심지어 인터렉티뷰 뉴스 제작을 위한 최소한의 기술적 지원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만큼 내부의 저항이 거셌고, 부정적인 기운이  만연했다. 그렇게 시작된 인터렉티브팀은 2013년 현재 40명 이상의 조직으로 성장했고 뉴욕타임스 디지털 전략을 상징하는 부서로 자리매김했다.

애론 필호퍼의 가디언 이직은 디지털 퍼스트 전략에서 디지털 네이티브 인재가 차지하는 위상을 역설한다. 그리고 이 같은 인재에 부여된 권한과 책임이 왜 중요한지를 알려주고 있다. 디지털 전략을 주도할 수 있는 인재의 영입과 육성, 이를 뒷받침해주는 직무와 권한 부여 그것이 뉴욕타임스의 현재를 만들어낸 기반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반대로 디지털 전략을 구현할 수 있는 충분한 여건과 환경이 제공되지 않는다면 언제든 디지털 퍼스트 전략은 정체 상태로 머물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기도 한다.

디지털 퍼스트, 재교육이 해법일까

국내 언론사가 디지털 퍼스트 전략을 논의하면서 생략하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인재의 영입이다. 수년 또는 십수년을 종이신문 DNA로 살아온 기자들을 재교육으로 변환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접근은 낭만이 짙게 밴 선택이자 전략이다.

편집국 내부 의사결정자들은 그들 스스로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기자의 관성, 습관을 의도적으로 모른 체한다. 촉박한 마감 시한과 주5일이 보장되지 않은 근무 여건 속에서 재교육으로 디지털 기자로 거듭나길 압박하는 방식은 효율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프로그래밍 경력이 전무한 편집국 기자들에게 인터렉티브 뉴스를 생산하라는 미션은 닭에 타조알을 낳으라는 명령과도 같다.

미국 유력 언론들도 내부 재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디지털 퍼스트 전략을 실행하지 않는다. 니먼저널리즘랩의 조슈아 밴턴는 “미국 언론사는 사내 교육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교육이 있더라도 강의 정도 수준이지 실제 실행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디지털 퍼스트를 선도하고 있는 해외 언론사도 기자 재교육을 통해 성공적으로 디지털 전략을 수행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미디어오늘과 조슈아 벤튼의 인터뷰 중 일부

재교육은 실행과 관련 없는 인식 전환의 기회만을 제공할 뿐이다. 디지털 퍼스트를 ‘발행 순서의 교체’라는 협의로 이해할 때에 가능한 선택지다. 데스트톱 애플리케이션의 기사입력기를 보다 나은 UI/UX로 개발해 기자들에게 웹으로 제공한다면 협의의 디지털 퍼스트는 어렵지 않게 수행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소소한 툴마저도 핵심 사용자인 기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기자들의 저항은 그래서 합리적이다.

다시 말하지만 재교육은 기자들에게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일 것을 강제하는 것일 뿐, 그것이 기자들의 습관을 전환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습관은 절박함 속에서 움튼다. 과연 모든 기자들에게 균질적인 절박함을 강요하는 것이 가능이나 할까.

디지털 인재 영입과 조직, 그리고 협업 문화

뉴욕타임스 핵데이

워싱턴포스트 아즈라 클라인을 영입하며 단연 촉망받는 뉴스 미디어로 급부상한 복스미디어가디언, 뉴욕타임스 등은 매년 ‘핵 데이’(Hack Day)라는 특별한 행사를 개최한다. 핵 데이는 해커톤이라는 용어로 잘 알려져있다. 24시간 혹은 36시간 이내에 프로토타입을 개발해 발표하며 프로그래밍 실력을 뽐내는 자리기도 하다. 국내 포털 기업에서도 핵 데이 행사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뉴스 미디어가 개최하는 핵 데이 행사에는 기자에게도 열려있다. 기자, 개발자, 디자이너, 사업부서 직원들이 서로 한팀이 돼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나누고 실제 개발로 연결시킨다. 결과물도 결과물이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부서간 울타리를 넘기 위한 노력과 그 과정이다.

더 나은 저널리즘을 위해 꼭 필요한 기술적 기능이지만 프로그래밍 역량을 갖추지 못해 구현하기 어려운 기자에게 핵 데이는 무척이나 유용한 행사다. 개발자, 디자이너와 의기투합해  협업하며 최소한의 시제품을 창조해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다른 직군과 협업할 기회가 없는 국내 언론사 기자들에겐 생소하겠지만, 부서간 협업과 디지털 혁신을 촉진하는 방식으로 핵 데이는 IT 기업 전반에 보편적으로 스며든 문화적 이벤트다. 무엇보다 디지털 조직으로의 근본적 전환을 추진하는 촉매이기도 하다.

‘핵 데이’는 디지털 퍼스트를 추진하려는 국내 언론사들에게 두 가지 시사점을 제시한다. 모든 기자가 프로그래밍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과 협업을 통해 얼마든지 그 이상의 디지털 수행물을 제작해 낼 수 있다는 점이다. 기자들은 더 나은 저널리즘을 생산하는데 집중하고 디지털 퍼스트를 위한 새로운 실험들은 협업을 통해 풀어나가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 셈이다. 다만 핵 데이 또한 역량있는 디지털 인재의 영입과 조직을 갖추지 못한다면 시도해볼 수조차 없다.

핵 데이는 젊은 기자들이 협업의 가치를 체득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경로다. 디지털 퍼스트를 내재화하는 첩경이기도 하다. 젊은 기자들을 중심으로 국내에서 개최되는 다양한 해커톤 프로그램에 참여를 독려하고 프로토타입 개발의 성취감을 직접 맛볼 기회를 제공한다면 그 경험이 오롯이 디지털 퍼스트 프로젝트의 자양분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재교육이 제공하는 피상적 긴장감보다는 직접 참여하고 실행하며 습득하는 과정에서 확인한 협업의 잠재력이 디지털 퍼스트를 지향하는 언론사들에게 더 큰 기회가 될 것이다.

디지털 인재의 영입 혹은 육성

요컨대, 디지털 퍼스트는 단순히 발행 순서의 변화를 의미하는 좁은 의미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저널리즘의 지향점부터 수익 모델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인 변화를 상징하는 포괄적 용어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왜 가디언이 디지털 퍼스트 조직으로의 전환을 선포하면서 ‘오픈 저널리즘’이라는 새로운 저널리즘의 정의를 내놨는지 곰곰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기존 기자의 인식을 바꾸려는 톱다운식 재교육보다 역량 있는 디지털 인재를 영입하고 채용함으로써 전혀 다른 디지털 조직을 신설하는 것이 디지털 퍼스트를 실질적이고 장기적으로 구현하는데 효과적이다. 현실적 제약으로 그조차도 어렵다면 국내외 다양한 해커톤 행사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디지털 DNA를 갖춘 인재를 내부에서 육성하는 방식도 고려할 만하다. 앞선 해외 언론사의 사례들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혁신보고서를 접한 이들이라면 국내 언론사나 해외 언론사들이나 고민의 지점에서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쯤을 확인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한 디지털 퍼스트의 해법이 더 설득력을 지닌다.

결국 또 사람이다. 종이신문 DNA가 뚜렷한 기자를 ‘돌려막는’ 관행이 반복되는 한 디지털 퍼스트는 요원하다. 요란한 구호에 그칠 수도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게 예나 지금이나 정답이다.

참고 문헌

  • 레프 마노비치.(2013). 소프트웨어가 명령한다. 이재현 옮김.(2014). 커뮤니케이션북스. P.85~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