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언론중재위원회 언론사람 2020년 6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올초 더마크업(The Markup)의 등장은 신선함 자체였다. 내부 진통으로 창간이 연기되는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이들이 세상에 내놓은 첫 번째 기사를 보며 디지털 시대 저널리즘의 교과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무엇보다 ‘더마크업 방법‘(The Markup Method)이라 이름 붙인 취재/보도 프로세스는 ’저널리즘의 미래‘를 당겨보는 특별한 경험이기도 했다. 구축(build)-방어(bulletproof)-결과 공개(show our work)의 절차를 거친 뒤에라야 기사를 발행하는 과정은 마치 권위 있는 학술지의 게재 절차에 비견할 만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미국 정치 캠페인 이메일이 구글 Gmail에서 자동 분류되는 알고리즘의 편향성을 들춰낸 첫 번째 프로젝트를 비롯해 미국 자동차 보험회사 올스테이트의 보험료 가격설정 모델에 젠더, 인종 차별이 존재한다는 분석 결과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철저하게 ‘더마크업 방법’을 준수했다. 이를테면, 정치인이 발송한 이메일이 Gmail 분류 알고리즘을 거쳐 스팸으로 향하는 비율을 도출하기까지, 모든 분석 과정을 깃허브에 공개했다. 각 후보자 간, 정치 그룹 간 스팸 비율의 차이도 재현해 볼 수 있도록 원본 데이터도 공유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메일 분류 알고리즘이 유권자의 공평한 정보 획득에 개입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제시함으로써 탐사보도로서의 가치도 더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기사 자체를 복사해갈 수 있도록 재발행(republish) 기능도 제공했다. 과학적 방법론의 ‘재현 가능성’과 지식의 결합과 공유, 동료비판을 어느 언론사보다 귀하게 간주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더마크업은 이렇듯 극단적 투명성과 과학적 방법론을 그들 저널리즘의 핵심 원칙으로 삼았다. 허위조작정보가 범람하는 뉴스 생태계의 위기를 투명성으로 극복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당연히 이 모든 과정에는 데이터 저널리스트와 엔지니어의 탄탄한 협업이 전제돼 있었다.

성역처럼 남아있던 기술권력들 그리고 디지털 권력을 작동시키는 ‘블랙박스’ 알고리즘들은 더마크업의 투명한 역공학 방법론에 따라 하나씩 하나씩 해체되고 있다. 투명성은 감시자의 확대로 이어지며 제2, 제3의 비판 보도를 만들어내고도 있다. 국내 대형 IT 기업들의 알고리즘 권력을 인상 비평 수준에서 보도하는 국내 언론과는 질적으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2020-06-09------12.01.14

기술 권력이 집중돼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이들을 감시하기 위한 언론사들의 도전은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더마크업 외에도 복스미디어 산하 레코드는 ‘오픈소스드’라는 신규 채널을 열었다. 알고리즘과 인공지능, 프라이버시 등에 대해 갖고 있는 각종 신화들을 크라우드소싱 방식으로 파헤쳐 깨트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위해 전세계 전문가들을 오픈소스드 네트워크로 연결해 기술권력을 감시하고 있다. 이들은 더마크업과는 달리 쉬운 설명을 핵심 가치로 삼았다.

‘정치 전문 미디어’ 폴리티코가 선보인 ‘프로토콜’은 실리콘밸리를 워싱턴DC처럼 접근하겠다며 출범한 버티컬 미디어다. 이들은 창간 일성으로 기술 비평의 대상이 제품이 아니라 제품을 설계한 사람이며, 그들이 행사하는 권력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기술에 대한 막연한 낙관주의는 프로토콜의 보도를 거치면 회의의 대상으로 전환된다. 의사결정 이면에 개입하는 워싱턴DC와 실리콘밸리의 결탁도 이들의 주된 보도 영역이다.

중심 권력의 행위자와 권력의 작동 방식이 변화하면 그것을 감시하는 저널리즘의 접근법도 바뀌어야 한다. ‘알고리즘은 영업 비밀’이라는 기술권력의 언설 앞에 좌절과 무력감만을 표하는 것은 저널리스트로서의 게을음을 인정하는 변명에 불과하다. 입력 데이터와 출력 데이터의 정밀한 대조를 통해 특정 알고리즘과 그 모델의 한계를 추적하는 역공학 방법론은 저널리즘이 학습하고 수용해야 할 과제이자 책무다. 알고리즘에 내재된 편향을 발견하고 그것과 권력과의 연결고리를 탐색하려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훈련이다. 그러나 이에 앞서 ‘알고리즘은 완벽하고 무결하다’는 신화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더마크업과 오픈소스드, 프로토콜과 같은 기술 감시 언론이 국내에서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외신 받아쓰기로는 권력 감시의 의무를 다하기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