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마스, 이데올로기, 의사소통

이태우(대구카톨릭대 철학)

시작하는 말

  • 하버마스는 우리가 의사소통을 통해 도달한 합의가 과연 참된 합의인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의사소통을 통해 도달한 합의라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왜곡되고 거짓된 합의가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버마스의 주된 관심사는 바로 이러한 왜곡된 의사소통을 극복하기 위한, 참된 합의와 일치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적 조건을 탐색하는 것이다.(p.118)
  • 이 글에서는 의사소통적 합리성 이론을 집중적으로 전개한 하버마스의 후기 사상에 대한 논의보다 후기 사상을 전개하기에 앞서 의사소통론의 필요성과 가능 조건을 모색한 선행적 작업을 중심으로 그의 소통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 이 논의를 위해 우리는 먼저 하버마스가 비판하고 있는 ‘언어’에 대한 문제점을 가다머와의 해석학 논쟁을 통해 고찰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해석학과 언어의 보편성

  • 이런 논쟁의 과정에서 그가 일관되게 유지한 입장은 대화에 의한 이성의 확립이다. 말하자면 의사소통적 이성과 절차적 합리성에 의한 민주주의의 확립이 그가 줄기차게 추진했던 프로그램이었다.
  • 언어와 의사소통에 관한 하버마스의 관심은 가다머와의 해석학 논쟁에서 잘 나타난다. 가다머-하버마스 간의 해석학 논쟁의 쟁점은 해석학의 보편성에 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 가다머의 입장
    • 이해의 전과정은 언어적 과정이라고 하면서 이해와 언어의 불가분성을 주장한다
    • 언어적 표현의 문제는 이해의 문제이고, 모든 해석은 언어라는 매체를 통해서 가능하게 된다.
    • 언어가 결코 세계 안에서 인간의 소유물에 불과한 것이 아니고 인간이 세계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언어에 의존한다고 주장한다.
    • 이해될 수 있는 존재는 언어이며, 또한 언어의 거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반영되어 있다.
    • 해석학적 존재는 언어요, 이 언어는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석학적 현상은 보편성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p.120)
  • 하버마스의 입장

    • 가다머의 보편성 주장에 대해 그것이 지니고 있는 한계성을 지적하고 이러한 한계성을 이데올로기 비판으로서의 해석학, 즉 비판적 해석학을 통해서 극복하고자 한다.
    • 첫번째 비판 : 언어가 사회의 객관적 연관과 사회과정을 구성하는 유일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
    • 두번째 비판 : 가다머의 해석학을 일상언어적인 의사소통 구조에 대한 철학적 숙고로 규정하고 일상 언어 속에서 발생하는 체계적으로 왜곡된 의사소통을 예로 들면서 가다머의 보편성 요구를 반박 – 이해될 수 없는 어떤 특정한 삶의 표현이 있다
    • 해석학적 이해의 반성적 힘을 강조하면서, 가다머가 이해 안에서 전개되는 반성의 힘을 오해했다고 지적
    • 요컨대, 전통과 권위의 전승은, 이해의 반성적 힘이 결여됐을 때 가다머가 주장하는 해석학적 이해의 담지자로서 또한 체계적으로 왜곡된 이데올로기의 담지자로서의 자리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것이 하버마스의 견해다.
    • 반성의 권리는 전통의 연관 자체를 넘어서는 준거체계를 요구하게 되며, 오직 그렇게 해서만이 전승이 비판될 수 있다고 하버마스는 주장한다.
    • 하버마스는 반성의 힘을 부인하고 전통의 맥락에만 사로잡혀 있는 가다머의 독단론이 언어 일반의 객관성에 매여 있을 뿐만 아니라 합일의 상호주관성 자체를 일그러뜨리며 또한 일상언어를 체계적으로 왜곡시키는 폭력의 억압성에 굴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p.122)

      "언어는 지배와 사회적 권력의 매체이기도 하다. 언어는 조직화된 권력관계의 정당화에 봉사한다. 이 정당화가 권력관계를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 한 그리고 권력관계가 단지 정당화에서 표현되기만 하는 한 언어도 역시 이데올로기다." 

체계적으로 왜곡된 의사소통으로서 이데올로기

  • 체계적으로 왜곡된 의사소통의 2가지 유형
    1. 명백히 병리학적 언어 장애(정신병자)가 관찰될 수 있는 이해불가능한 의미연관
    2. 병리학적이지 않은 언어에서 나타나는 의미연관
  • 후자를 체계적으로 왜곡된 의사소통의 보다 더 중요한 유형으로 간주 : 어떠한 의사소통도 장애로 인식하지 못함
  • 왜곡된 의사소통은 순수의사소통행위 모델로부터 일탈
    • 언어 차원에서 왜곡된 의사소통은 언어적 관습의 인정된 체계로부터 벗어난 규칙의 사용을 포함한다
    • 행위의 차원에서 왜곡된 의사소통은 행위 유형의 엄격하고 강제적인 반복 속에서 명시화된다.
    • 전체적으로 볼 때, 불일치는 다양한 의사소통의 차원들 사이에서 나타난다.
  • 체계적으로 왜곡된 의사소통의 개념은 비판이론을 위해 재형성된 틀을 마련해준다. 비판이론은 이데올로기의 베일을 간파하는데 관심을 가지며 특별한 사회적 형성을 특징 지우는 억압의 메커니즘을 해명하는 데 관심을 가진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다시 생산력의 발달과 권력관계의 제도화에 의존한다.(p.125)
  • 체계적으로 왜곡된 의사소통은 또한 하버마스의 행위이론과 이데올로기 비판 간을 연결하는 하나의 열쇠를 제공해준다.
    • 연관의 본성은 정신 분석의 모델에 의해 설정되어 있는데 이 정신분석의 모델은 억압의 운용에 의해 훼손돼온 행위의 중요성을 어떻게 해명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 이데올로기 개념에 대한 강조는 이 개념이 다른 사상의 전통들 속에서 너무나 흔히 무시되고 있기 때문에, 하버마스의 작업의 큰 장점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의사소통능력이론

  •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이론은 비판적 사회이론에 규범적 기초를 마련하려는 시도다. 그것은 도구적 이성으로부터 의사소통적 이성으로 확장된 포괄적 이성의 개념화를 옹호하는 문제에 대한 하나의 새로운 접근으로 간주될 수 있다.
  •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규범적, 비판적 차원을 포괄하는 이성의 철학적 개념화와 역사철학의 관점에서 기술이데올로기로서의 실증주의에 대한 비판을 발전시켰다.(p.126)
  • 하버마스는 사회이론의 출발점으로서 언어철학이 이룩한 발전에 주목한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 이 같은 새로운 지향은 언어의 문제가 오늘날 의식의 문제를 대체하고 있기에 필연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 왜곡되지 않은 의사소통능력에 대한 이론 요구 : 하버마스는 촘스키가 수행한 언어능력이론에 대한 논의로부터 시작한다
    • 촘스키의 변형생성문법의 근본 가정은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부여된 보편적 규칙의 체계가 있으며 언어는 다름 아닌 마음 속에 주어진
    • 그의 연구 결과는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등 17세기 합리주의 철학자들의 주장을 변호하며 인간 정신 속에 본유관념이 존재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 어린 아이는 따로 배우지 않고도 말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한다는 사례
      • 어린이는 말하는 법을 배우기 이전에 마음 속에 이미 심어진 언어 형태, 선험적 도식이라는 보편적 문법을 갖고 있다
      • 화자는 올바른 정식과 일탈된 정식을 직관적으로 구별할 수 있다
      • 촘스키의 기본적 연구계획은 내재적 언어메커니즘에 근거한 규칙 체계의 숙달로서 이해되는 언어능력의 재구성 작업으로 변모한다
  • 하버마스는 촘스키의 언어규칙체계에 있어서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것은 바로 이러한 미리 설정된 암호 또는 프로그램에 의해서라고 본다.(p.129)
  • 하버마스는 촘스키 연구에 대한 근본적 문제점을 제기
    • 촘스키의 계획 자체가 특정한 역사적 국면에서의 특정한 사회체계에 근거한 선이해에 의해 인도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 하버마스가 필요로 하는 것은 언어 자체의 일반이론으로부터 체계적으로 발전된, 자연과 사회의 모든 가능한 전면적 해석을 분석하기 위한 준거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준거틀은 우리가 화자의 능력이 문법적 문장의 생산을 위한 규칙의 단순한 숙달만이 아니라 의사소통을 하는 능력과도 관련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드러난다.
  • 하버마스에 따르면 언어적 능력의 적용이 원칙적으로 가능하게 되는 상황은 언어적인 상호주관성의 구조에 의존한다. 하버마스는 이러한 의사소통능력은 바로 이상적 담화상황의 숙달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 의사소통능력은 이상적 담화상황을 야기하는 규칙체계에 관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호이해할 수 있는 어떤 유능한 화자들 간에 최초로 상호주관성의 형식을 확립하는 것은 대화-구성적 보편소이다 
  • 대화-구성적 보편소는 발화수반적 차원 위에서 수행될 때 화자의 의도가 충분히 전달될 수 있고 청자는 이를 온전히 이해하게 되며, 따라서 화자와 청자 간의 상호주관적 상호이해가 가능케된다.
  • 하버마스에 따르면, 의사소통능력은 무엇보다도 언어적 능력이 추상적 언어규칙체계에 관계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이상적 담화상황에 관계한다.(p.131)
  • 하버마스는 통상적 언어의 의사소통으로 진입하기 위해 화자가 숙달하고자 하는 대화-구성적 보편소를 5개 등급으로 구분
    • 인칭대명사와 그들의 변형
    • 인사와 소개말의 제형식
    • 시간과 공간의 지시적 표현
    • 수행동사
    • 화자의 태도를 나타내는 비수행적 의향동사
  • 이 구분을 근거로 하버마스는 개인의 이상적 담화상황을 특징짓고 그것이 체계적 왜곡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사실을 확신시키는 3가지 균형적 조건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
    • 강제되지 않은 합의에 도달하기 위한 전략 개발을 가능하게 하는 무제한의 토의
    • 상호 손상받지 않은 자아 표현으로서, 그것을 통해 대화당사자들의 극단적으로 개인화된 조건 하에서의 의사소통을 의미하는 것
    • 보편화된 규범의 필연성뿐만 아니라 보편적 이해의 요구와 가능케하는 기대되는 것의 완전한 상보성
  • 진리, 자유 및 정의의 이상으로 이해해왔던 것을 언어적으로 개념화한 것

담론, 합의, 이상적 담화상황

  • 하버마스는 진리론에서 의사소통행위와 담론과의 차이, 말하자면, 진리에 관한 합의이론과 이상적 담화상황이라는 진리론의 새로운 두 중심개념을 결정적으로 구분한다
  • 의사소통행위
    • 개인들이 은연중 무비판적으로 일상생활의 규범, 사회적 실천 및 신념체계를 받아들이는 사회적 상호작용 형태들을 지칭
  • 담론
    • 일상생활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신념체계, 규범, 가치 및 이데올로기에 관한 배경적 합의들을 명시적으로 논제화하고 비판하는 것
    • 담론은 문제시되는 요구들을 담론적 입증과 보완함으로써, 말하자면 토론을 통해 진리의 요구에 관한 분쟁을 해결하고자 한다.
  • 이와 같이 하버마스가 말하는 담론은 정상적인 사회적 행위맥락에 균열을 가하여 의문을 제기하며, 지배적인 신념체계, 이데올로기, 규범 및 가치를 비판적으로 논제화하고자 함을 알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이상적 담론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대 행위의 강제들로부터 자유로운 ‘더 나은 토론을 위한 비강요적 힘’에 의해 인도되는 동의에 도달하려는 의지를 제외한 모든 동기들은 배제되어야 한다.(p.134)
  • 하버마스는 담론과 관련된 4가지 기본 전제를 설정한다
    • 진정한 담론은 동의 혹은 소위 합리적 합의를 목표로 한다
    • 합리적 합의의 도출은 가능하다
    • 진정한 합의는 거짓 합의와 구별 가능하다
    • 오직 이러한 합리적 합의만이 진리요구와 규범을 객관적으로 정립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 이들 주장들은 발언의 이해가능성, 그 명제적 내용의 진리, 그 수행적 내용의 정당성, 그리고 화자의 진실성을 포함한다
  • 하버마스는 모든 참여자들에게 내적 외적 강제로부터 평등과 자유가 요구되는 이상적 담화상황이라는 견지에서 이러한 삶의 형태를 개념화한다. 그는 이 같은 이상이 비록 반사실적이기는 하지만 모든 의사소통에서 ‘예견되며’ 그런 만큼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상적 담화상황은 체계적으로 왜곡된 의사소통을 측정할 수 있는 비판적 기준으로서 기여할 수 있다.(p.135)

    "의사소통이 외적이고 우연적인 작용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의사소통 자체의 구조에서 생기는 강제에 의해서도 방해받지 않는 담화의 상황을 나는 이상적이라고 부른다. 이상적 담화상황은 의사소통의 체계적 왜곡을 배제한다." 
  • 하버마스가 상정하는 이상적 담화상황의 조건

    • 모든 담론의 참여자들은 언제나 담론을 개시하고 진행시키기 위한 동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
    • 담론의 참여자는 주장, 권고 및 설명을 제시하거나 정당화를 요구할 동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
    • 모든 참여자들은 행위자로서 그들의 태도, 소망, 감정 및 의향을 표현할 동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
    • 모든 참여자들은 명령하고, 반박하고, 허가하고, 금지하는 등의 언어행위를 적용할 동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