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나 신념은 가끔 저널리스트들의 비판적 의심을 짓누르거나 은폐한다. 그 가운데 으뜸은 저널리즘이 당연히 민주주의에 기여한다고 하는 신념 체계다. 이미 적지 않은 이론가들이 둘 사이의 관계를 부정하거나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20세기 초반 구축된 이 이론과 신화는 좀체 질문을 허락하지 않는다.

“기자들이 신봉하는 저널리즘의 민주주의 이론의 가장 큰 맹점은 바로 그들이 공중에게 제공하는 정보가 자동적으로 민주주의를 신장시킨다는 생각”이라는 허버트 갠즈의 비판은 지금도 유효하다. 탐사보도가, 공직자에 대한 폭로성 특종이 민주주의를 향상시키는데 자동적으로 기여할 것이라는 명제는 논리적으로 허술하고 여전히 엉성하다.

탐사보도가 제공하는 깊은 정보가 없어도 시민들은 그들 스스로 정치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또한 시민들은 황우석사태에서 확인할 수 있듯, 자신들의 신념과 입장을 지키기 위해 중대한 보도를 외면하거나 거부한다. 정보 제공이 교양있는 시민을 양성해 민주주의 질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고전적 믿음은 지금 의심을 필요로 한다.

저널리즘 무용론을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실제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한 전제 조건과 저널리즘의 윤리적 일반 지향이 어떻게 관련될 수 있는지, 그것에 대한 보다 성찰적인 이해와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잘 쓰여진 정치 보도가 민주주의의 향상에 기여할 것이라는 고전적 신념 체계를 대상화하여 비판하는 것, 그래서 재구조화하는 작업이 우리에 의해 수행돼야 하지 않을까. “저널리즘 이론에 깔린 이상주의는 기자들이 실제로 민주주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현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허버트 갠즈의 말씀을 기억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