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규범과 강령은 한국 사회, 한국 민주주의가 품고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널리즘 영역에서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려고 합니다.

가장 근본적인 질문부터 시작을 하겠습니다. 저널리즘은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요소일까요? 저널리즘은 민주주의를 위해 어떤 기여와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조금더 좁혀서 한국의 저널리즘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공공재라는 주장과 인식은 어떤 근거에서 유효할까요?

지난 4월 한국신문협회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저널리즘 지원 대(對)정부 정책제안’을 발표하면서 신문과 민주주의와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신문은 공동체와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위한 인프라이자 우리 사회를 지탱·발전시키는 대표적인 ‘공공재’(public goods)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3가지를 제시했는데요, ▲정보와 지식의 1차 생산 기지 역할 ▲다양한 관점이 경쟁하는 공적 담론의 장 형성 ▲권력에 대한 감시견(watch dog) 역할을 수행하고, 정책에 대한 대안 제시를 통해 시민 참여를 활성화 등이 그것이었습니다.

신문협회의 근거에는 몇 가지 맹점이 존재합니다. 거대한 범주에서, 원론적 관점에서 3가지 근거는 그렇게 틀리진 않습니다. 다만, 세부적으로 들여다 보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정보와 지식의 1차 생산 기지가 여전히 신문인가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방송이 있을 수 있고요, 수많은 인터넷신문이 그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정보의 생산 측면만 따진다면 과거에는 블로거가 최근에는 유튜버가 그 역할 범주에 진입해 들어오고 있는 중이기도 합니다.

두번째 근거, 다양한 관점이 경쟁하는 공적 담론의 장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은 쉽게 반박이 됩니다. 국내 신문의 복합적 관점 기사 비중은 17.1%로 뉴욕타임스에 비하면 ⅓ 수준에 그칩니다(김경모, 2018, p.116-117). 다양한 관점보다는 특정한 이념과 진영의 관점과 시각을 지속적으로 꾸준하게 제시하거나 대변해 오고 있기에 공적 담론의 장이 형성되는데 지체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심지어 이는 한국 언론의 심각한 정파성으로 인해 한국 저널리즘장에선 구호 수준으로만 남아있는 명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기자 사회 안에서 저널리즘에 대한 정의와 이해가 다르며, 그것의 기여와 역할에 대해 다른 답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관찰해서입니다. 특히 ‘저널리즘이 민주주의 진보에 기여한다’라는 명제가 어떤 기자 집단에서는 확고부동한 신념처럼 남아있는 반면, 특정 기자 집단에서는 그 자체에 대한 확신이나 이해조차 없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전자의 경우엔 저널리즘과 민주주의의 연결고리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는 못하면서도 신문협회의 요구 1, 3을 근거로 그것의 기여를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미디어 사회학자 허버트 갠즈는 “기자들이 신봉하는 저널리즘의 민주주의 이론의 가장 큰 맹점은 바로 그들이 공중에게 제공하는 정보가 자동적으로 민주주의를 신장시킨다는 생각”이라고 했습니다(Ganz, 2003/2008, p.120). 이 지적은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다수의 기자들은 그들이 정보를 공중에게 전달만 한다면 민주주의가 신장될 것이라고 과신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런 정보를 생산하는 주체가 기자가 유일하다는 착각에 빠져 있기도 합니다.

갠즈는 3의 조건에 대해서도 반박하는 의견을 여러 미디어 수용자 연구를 바탕으로 내놓은 적이 있습니다(Ganz, 2003/2008, p.115). 그의 설명을 들어볼까요?

“이 이론의 세번째 대목은 시민들에게 정보만 주면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를 느끼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생활에서 그런 경우는 드물다. 미디어 수용자에 관한 연구들은 정치적 참여에 있어 결정적인 변수는 미디어를 통한 정보 소비의 양이 아니라 평소의 지적 수준임을 보여준다. 이 연구들에 따르면 교육 수준이 높고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일수록 투표를 통하든 정치 조직을 통하든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물론 갠즈의 반박은 SNS와 같은 신유형의 미디어가 등장하기 이전에 실시된 미디어 수용자 연구에 기반했을 것입니다. 최근 들어 일부 대학생 집단을 중심으로 ‘소셜 미디어 정보추구→정치적 메시지 교환(소셜 미디어 활용)→사회적 압력→전통적 정치참여 순으로 인과관계가 전개되고 있다’는 경험적 증거가 드러나고는 있습니다(심홍진, 2011, p.101-102). 그러나 어디까지는 그 잠재성을 확인한 수준이지, SNS의 사용 증대가 정치 참여와 직접적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여전히 어렵습니다(최지향, 2016, p.136-137).

어디까지나 신문이나 전통 언론이 아닌 소셜미디어와 그러한 연결 고리를 일부 가질 잠재성이 확인되는 정도입니다. 정치 참여와 뉴스 소비, 특히 신문의 소비와 관련이 높거나 인과관계가 존재한다는 연구는 여전히 그리 흔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만약 저널리즘이 민주주의에 중요하고 핵심적인 요소라는 전제가 무너진다면, 혹은 실증되거나 입증되지 않는다면, 저널리스트로서 사명감과 자긍심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세금과 같은 공적인 자원을 배분 받을 자격을 박탈 당할 수도 있습니다. 더 많은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정보/커뮤니케이션 교환 거래를 매개하는 사업자의 위치로 전락하게 된다면, 저널리즘에 부여해왔던 사회적 배려와 인정은 동시에 소멸될 수도 있을 겁니다.

문제는 최근 들어 저널리즘의 공적/사회적 가치와 기여를 깊이 경험해보지 않은 수용자들을 물론이고 젊은 기자들의 경우에도 기자직에 대한 존중감, 자긍심이 윗세대와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널리즘을 향해 가해지는 아니 뉴스 사업자를 향해 가해지는 수많은 멸칭과 조롱, 비난은 저널리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흐름으로 나아가고 있기에 가히 위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저널리즘이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바를 입증할 책임은 저널리즘 내부에 있음을 먼저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연재 순서

(1) 민주주의를 위해 저널리즘은 꼭 필요할까?
(2) 한국 민주주의와 저널리즘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조건
(3) 당대 한국 민주주의의 핵심 문제들
(4) 당대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 해결을 위한 저널리즘 용수철 모델
(5) 용수철 모델의 실천을 위한 '다원적 저널리즘'
(6) 결론을 향하여


참고 문헌

강준만. (2016). 왜 저널리즘이 민주주의를 결정하는가? : 월터 리프먼. 인물과사상, (219), 45-78.
강준만. (2017). 언론학에서의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월터 리프먼의 삶과 사상에 대한 재해석. 커뮤니케이션 이론, 13(4), 92-165.
김경모. (2018). 기사의 품질: 한국 일간지 와 해외 유력지 비교 연구. 이화여대출판문화원.
심홍진. (2011). 소셜 미디어와 정치 참여에 관한 연구: 사회적 압력이 정치 참여에 미치는영향 분석을 중심으로. [KOCEI] 선거연구,
임상원. (2018). 저널리즘 과 프래그머티즘: 리프먼, 듀이, 로티와 저널리즘. Ak'anet.
최장집. (2020). 다시 한국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 위기와 대안.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 한국정치연구 | 29권 2호 1 ~ 26.
최지향. (2016). SNS 이용과 정치참여: 정치적 사회자본과 정보 및 오락추구 동기의 조절된 매개효과를 중심으로. 한국언론학보, 60(5), 123-144.
Anderson, R., Dardenne, R. W., & Killenberg, G. M. (1994). The conversation of journalism: Communication, community, and news. 차재영 옮김. (2006). 저널리즘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만드는가? 커뮤니케이션북스.
Gans, H. J. (2003). Democracy and the News. Oxford University Press. 남재일 역.(2008). 저널리즘, 민주주의에 약인가 독인가.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