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 해결을 위한 저널리즘의 역할 모델 - 용수철 모델

용수철 쓰거나 볼 일 자주 없으시죠? 오늘은 용수철 얘기로 시작을 해야 할 듯합니다.

용수철은 힘을 가했을 때 원래의 모양으로 돌아오는 복원력을 핵심 성질로 갖습니다. 늘어나는 성질을 탄성, 아예 이 성질을 잃어버린 상태나 속성을 소성이라고 합니다. 탄성을 넘어 소성으로 가는 기점을 탄성 한계라고 하죠. 탄성 한계를 넘으면 그 용수철은 본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퍼져버리는 거죠.

용수철의 복원력은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계산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F(복원력) = -kx

  • k: 용수철 상수
  • x : 변화한 용수철의 길이

용수철 상수는 용수철의 재질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합니다. 그 상수가 복원력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거죠.
용수철 얘기를 꺼낸 것은 저널리즘이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방식을 용수철의 성질에 빗대 모델로 제시하고 싶어서입니다. 앞선 글에서 설명했다시피, 현재 시점 기준으로 저널리즘과 민주주의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착목해야 할 지점이 바로 양극화입니다. 저는 양극화를 정치적 양극화와 경제적 양극화 두 레이어로 분석했습니다. 두 레이어는 사실 분리돼 있기보다는 서로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 받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겁니다.

연결고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여전히 상관관계의 관점에서이지, 인과관계의 측면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하나하나 찾아들어가 본다면, 인과관계의 측면까지 발견해낼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걸어봅니다.

저는 저널리즘이 민주주의에 기여하기 위한 방식으로 ‘저널리즘의 용수철 모델'을 제안하려고 합니다. 앞선 후크의 법칙, 용수철 복원력 등에서 짐작하셨겠지만, 양극화라는 양쪽에서 바깥으로 당기는 힘을 안쪽으로 복원시킴으로써 양극화의 정도를 줄여나가는 것, 그것이 저널리즘이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 아닐까 싶습니다.

감정의 양극화, 그것이 초래한 정치적 이념의 양극화와 경제적 양극화 상태를, 양끝점의 ‘거리좁힘’ 방식으로 저널리즘이 작동할 수 있게 된다면, 궁극적으로 제도로서 민주주의를 안정화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입니다. 예를 들어서, 감정의 양극화로 진영간 대립과 갈등이 극단적으로 전개되고 있을 때, 언론사마다의 복원력을 활용해서 저널리즘이 ‘거리좁힘'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극단적 대립에 의한 전제정'이 등장할 가능성을 낮출 수 있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앞서 공식을 이 ‘저널리즘의 용수철 모델’에 맞게 변형하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F=-jp

  • j: 각 언론사의 저널리즘 상수
  • p: 양극화로 벌어진 거리

현재의 사회 문제를 이렇게 정량적 방식으로 재구성한 뒤 저널리즘의 기여 방식을 모델링화 하는 게 설득력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단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양극화의 거리를 어떤 기준으로 어떤 수치로 대입할 것인가는 매우 난해한 문제일 수도 있죠. 따라서 조금더 계산식의 활용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따져볼 필요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 지점까지 나아가지는 못할 듯합니다.

j :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는 언론사의 저널리즘 상수(민주주의 저널리즘 상수)

그래도 j 값은 명확하게 설명할 필요는 있을 듯합니다. 후크의 법칙에서 용수철 상수와 마찬가지로 j값은 클수록 잘 안 늘어납니다. 다시 말해 j값이 클수록 양쪽에서 정치적/경제적 극화를 위해 당기는 힘에도 잘 늘어나지 않는다는 거죠. 대신 j값은 언론사마다, 미디어의 유형마다 다를 수가 있습니다. 각 언론사들이 준수하는 언론사들의 강령, 보도준칙, 저널리즘에 대한 철학과 관점 등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건 바로 j값을 어떻게 하면 키울 수 있을까가 아닌가 합니다.

만약 우리가 j값을 도출해낼 수 있다면, j값을 명분으로 그리고 j값의 크기에 따라 정부 자원을 할당받는 요구가 설득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정부로서도 모든 언론 / 발행 행위가 민주주의를 위한 저널리즘을 지향한다고 보지 않을 근거가 마련될 것이고요. 모든 언론사에 대한 자원의 균등 분배 고민으로부터 탈피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언론사들에게도 유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널리즘 지향 언론과 아닌 언론을 구분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모든 언론이 민주주의를 위한 저널리즘 행위를 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기에, 또 반드시 그러해야 할 이유가 없기에 저널리즘의 책무로부터 일부 언론사는 자유로워질 수도 있을 겁니다. 대신 그에 따른 공적 수혜를 포기하면 된다고 봅니다. 지금은 해당 언론사가 수행하는 저널리즘의 공공적 가치를 엄밀한 기준에 따라 구분/분류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민주주의에 해악을 끼치는 언론사까지 동일한 저널리즘의 행위 주체로 분류되는 문제를 야기해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재 순서

(1) 민주주의를 위해 저널리즘은 꼭 필요할까?
(2) 한국 민주주의와 저널리즘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조건
(3) 당대 한국 민주주의의 핵심 문제들
(4) 당대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 해결을 위한 저널리즘 용수철 모델
(5) 용수철 모델의 실천을 위한 '다원적 저널리즘'
(6) 결론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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