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개똥철학을 오랜만에 열거할 기회가 생겼네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개똥기술철학’입니다. 벤 톰슨의 글 ‘Clubhouse’s Inevitability’를 읽다가 문득 든 생각입니다. 물론 꼼꼼하게 읽어보진 않았습니다.

클럽하우스 이면의 '통제와 탈통제의 순환적 동학'

잠시 위 그림을 보시겠어요? 제가 기술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저는 이 과정을 ‘통제와 탈통제의 순환적 동학’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기술은 기본적으로 탈통제로부터 성장의 모멘텀을 얻지만, 이후 통제의 욕망 혹은 압력에 의해 서서히 성장세가 둔화되는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는 개념입니다. 통제하려는 힘(구심력)과 통제를 벗어나려는 힘(원심력)이 도전과 응전처럼 반복된다는 의미로 이해하셔도 됩니다. 여기서 통제의 주체는 (기술)엘리트이고 탈통제의 주체는 개인입니다.

아시다시피 인터넷의 등장 이후 개인은 끊임없이 통제와의 전쟁/사투를 벌여왔습니다. 통제는 곧 장악력이면서 동시에 엘리트의 기득권입니다. 부정적인 의미에서 기득권이라기보다는 더 많은 자원을 가지려는 욕망이 만들어낸 권력이라고 보면 어떨까 합니다. 개인들은 이러한 엘리트들의 기득권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저항하며 이탈하려 합니다. 원심력의 원천입니다.

새로운 기술은 이 지점에서 주로 탄생합니다.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수많은 개인들에게 탈통제를 보장하며 유혹하죠. 여기에 결정적 기술이 개입되는데 저는 ‘진입장벽의 혁신적 파괴’라고 부릅니다. 강화된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개인들의 욕망을 새로운 기술 설계자는 ‘진입장벽의 혁신적 파괴’를 통해 불러냅니다. 그리고 탈통제를 약속합니다.

대중(mass)의 소멸과 대중매체(mass media)의 종말
이 글은 제프 자비스의 ‘Death to the mass(es)’[https://buzzmachine.com/2017/12/29/death-to-the-masses/]에서 영감, 논평 거리를 얻어 시작하게됐습니다. -------------------------------------------------------------------------------- 대중매체는 Mass와 Media라는 단어의 조합이다. 이 뻔하고도 익숙한 합성어를 우리는 미디어를 통칭하는 용어로 쉽게 사용하고 있다.매스미디어 혹은 매스컴, 즉 대규…

여기서 ‘진입장벽의 혁신적 파괴’는 2가지가 핵심적으로 작동하더군요. 생산 진입 장벽의 파괴와 관계맺음(연결) 진입 장벽의 파괴. 인터넷 등장 초기 신문과 블로그 소프트웨어의 동학을 예로 들어볼까요? 신문은 끊임없이 진입장벽을 낮추긴 했지만 여전히 높은 투자 장벽을 갖고 있었습니다. 어마어마한 비용의 인쇄기와 부대 시설을 갖추지 않으면 생산이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블로그는 이 생산의 문턱을 혁명적으로 낮췄죠. 수많은 개인 미디어들이 생겨났고 정보의 다양한 생산이 가능해졌습니다. 정보의 생산 과잉이 벌어진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연결의 진입장벽 또한 상당 수준 허물어졌습니다. 신문이 독자와 관계를 맺으려면 유통 측면에서의 마케팅 비용이 상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길거리에서 신문을 판매하는 뉴스보이도 그런 측면에서 볼 수 있을 것이고요. 지하철 가판대나 지국도 연결의 진입 장벽으로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블로그는 어땠나요? RSS가 있었고 트랙백이 있었습니다. 댓글이 있었고 검색과도 연결돼 독자들과 만났습니다. 지하철 가판대나 지국 등에 비하면 연결의 진입장벽이 크게 낮아진 것이죠. 이렇게 진입 장벽의 혁신적 파괴는 새로운 개인들을 모으는 강력한 유혹의 무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나진 않습니다. 탈통제는 필연적으로 욕망하는 개인들의 일탈(탈주)을 낳습니다. Fake News 등이 그런 사례에 해당합니다. 개인들은 저마다의 욕망들을 갖고 있기에 그 욕망에 따라서 기존의 윤리 체계를 해체하며 이탈의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여기서도 일탈은 부정적 의미는 아닙니다. 기존 기술의 기대 체계, 윤리적 테두리 등에서 벗어난다고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정리하면

엘리트에 의한 통제 강화 진입장벽 혁신 탈통제 기술 등장   개인들의 탈통제 기술 수용 개인들의 범주 일탈(혹은 탈주) 엘리트의 통제 강화

이것이 반복돼 왔다는 의미입니다.

'통제-탈통제의 순환적 동학'으로 클럽하우스 바라보기

클럽하우스는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에 의한 통제 강화가 극단으로 치닫는 와중에 등장했습니다. 유튜브의 알고리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기술 설계 엘리트들의 상업적 욕망을 강화하기 위해 개인들을 그들의 목적으로 줄세우려는 알고리즘 통제는 개인들의 탈통제 욕망을 부추겨 왔습니다. 그나마 뉴스레터는 안전지대처럼 여겨졌고 지금도 그 흐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탈통제의 대안을 호시탐탐 찾아나섰던 사용자들은 좋은 대상을 클럽하우스에서 만나게 됩니다. 클럽하우스는 오디오 생산의 진입 장벽을 크게 낮췄습니다. 팟캐스트만 하더라도 생산의 진입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입니다. 적잖은 장비들과 공간을 요구하죠. 그래서인지 다수의 기술들은 연결 장벽의 완화에 더 집중을 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Anchor’라는 앱을 주목했었는데요. 팟캐스트의 생산 장벽을 모바일폰으로 대체하는 수준에서 크게 낮추긴 했습니다. 그리고 스포티파이에 인수가 됐죠. 전 여전히 Anchor의 가치를 높게 보는 편이지만, 연결의 장벽에선 여러 한계들이 많았습니다. 스포티파이가 이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만. 사운드클라우드는 연결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 도전적인 댓글 기능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생산 장벽 측면에서 한계가 존재했었죠.

여튼 Anchor의 등장과 클럽하우스의 등장은 기술적으로 동일한 맥락으로 보고 있습니다. 오디오 생산과 연결의진입 장벽을 낮추는 흐름들은 지속적으로 이어져왔고, 이것이 클럽하우스에서 결합되면서 ‘빵’ 터진 결과가 아닌가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팟캐스트를 제작할 수 있는 anchor.fm 앱. 

앞으로는?

탈통제를 열망하던 개인들은 여기에 더 많이 들어오게 될 겁니다. 이 기술을 수용할 것이고요. 하지만 머지 않아 개인들의 규정된 범주 이탈과 씨름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늘 벌어지는 일이니깐요. 개인들의 탈통제 기대를 충족시키면서도 탈주의 사회/문화적으로 제어할 수 있느냐가 오래 존속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오디오 레볼루션(1/4)
지금 이 글은 10억 명 넘는 사람들이 매일 사용하는, 그리고 이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세상을 완전히 바꿔놓은, 특히 매년 더욱 중요해지고 있지만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라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기술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헤드폰과 헤드폰을 통해 우리 귀에 들려오는 소리입니다. 이들은 모든 것을 바꾸고 있습니다. 헤드폰은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가치와 우리의 본능을 바꾸고 있습니다. 정치가들이 대중을 설득하는 방식도 바꾸었습니다. 나는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에 이러한 변화가 영향을 →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