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미디어 뉴스/소셜미디어와 시민저널리즘 2010/05/16 16:56 몽양부활

미디어 격변기다.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사의 인수 합병과 제휴, 혁신 사례가 소개된다. 일주일 휴가라도 다녀온 날엔 ‘미디어 문맹‘이 된 느낌이다. 패러다임 변동기에나 흔히 목격되는 현상이다.

이 가운데 몇 가지 현상을 주목한다. BBC의 시민 제작 영상 조직 ‘User-Generated Content hub'가 뜨고 있단다. 뉴욕타임스는 전 세계 시민들이 직접 찍은 사진에 지역 정보를 삽입, ’Moment in Time’이라는 서비스를 지난주에 소개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역 정치 전문 블로거들의 콘텐츠를 모아 'Political Blog Network'이라는 걸 내놨다. 모두 핵심은 시민이다.

구글의 저널리즘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Krishna Bharat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저널리즘을 구원하기 위한 구글 내부의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뉴스 비즈니스를 좇는 방법에 있어 구글과 언론사 간 전제의 차이는 독자의 참여다. 독자의 참여는 온라인이든 종이신문이든 방송이든 뉴스 소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도록 만든다. 시민들이 읽고 싶은 게 무엇이고 어떻게 참여시킬 것인지에 대해 얘기하는 경우를 잘 보지 못했다.”

영미권의 주류 언론은 시민의 참여가 저널리즘에, 그들의 비즈니스에 기여할 것이라는 전망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구글의 눈엔 미흡하게 비칠 정도지만 혁신의 중심축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한국의 주류 미디어와 시민참여

국내로 눈을 돌려보자. ‘시민 참여’ 미디어의 탄생은 빨랐지만 확산은 정체돼왔다. 여전히 독자 제보니 하며 1차원적인 참여 채널을 열어주는데 그치고 있다. 시민 참여의 편의성을 높인 혁신 사례는 좀체 찾아보기 어렵다. 여전히 시민을 정보 생산의 들러리로 바라보고 있다.

웹2.0 시대가 도래하기 이전까지, 기사를 위시한 정보 생산의 주체는 오로지 엘리트였다. 유통 수단도 독점했다. 시민들은 콘텐츠를 생산할 수단도 없었거니와 참여의 기회를 어렵게 보장받더라도 엘리트가 생산한 정보의 ‘액세서리’ 취급을 받았다. 그저 서자일 뿐이었다.

‘참여, 공유, 개방‘으로 중무장한 웹 2.0 서비스들은 시민들에게 마침내 생산 수단을 제공했다. 윤전기 없이도 값비싼 방송 장비 없이도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블로그가 그랬고 플리커가 그랬고 유튜브가 그랬다.

콘텐츠의 생산 수단을 확보한 시민은 보란 듯이 ‘주류 미디어의 쇄락’으로 앙갚음을 하고 있다. 그들은 주류 미디어를 소비하지 않으며, 신뢰하지 않는다. 신문 구독률과 열독률은 끝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참여를 배제한 엘리트에 대한 시민의 보복이다.

하지만 엘리트는 건재하다. 기세등등하다. 시민이 생산한 정보를 지금도 ‘쓰레기’ 취급하며 지면에서 전파에서 배제하고 있다. 언론사는 지금도 시민 생산 콘텐츠에 ‘잘 모르는 자들의 편협한 정보’, ‘가치 없는 정보’라는 ‘레테르‘를 붙인다. 오래전부터 구축된 정보 생산 수단의 독점이 지속될 것이라 확신한다.

엘리트의 시민포비아(CitizenPhobia)

엘리트의 시민공포증(CitizenPhobia), 참여공포증(Participationphobia)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인류의 역사는 참여와 배제의 돌고 도는 반복이다. 오프라인의 아고라포비아(Agoraphobia)와 온라인 아고라포비아(Agoraphobia)는 엘리트들의 역사적 병리현상의 현현이다.

특히 엘리트들은 시민들의 ‘날 것 그대로’가 저자거리를 넘어 전 사회로 확산되는데 더 큰 공포를 가지고 있다. 정보 유통의 독점을 내놓지 않는 이유다. 무한 확산성의 상징인 트위터를 선거법으로 꽁꽁 묶어두려는 시도 또한 시민공포증의 맥락에서 접근해야 이해가 가능하다.

엘리트는 시민들이 생산한 모든 정보가 마치 ‘욕설, 허위 비방, 편향’으로 가득 차 있다고 낙인 찍고 원천적으로 참여를 배제시키는 방법을 택해왔다. 이 프레임은 지금도 유효하다.

얼마 전 국내 몇몇 연구자들은 블로그의 글쓰기(읽기가 아닌)가 정치 효능감을 높여 사회 정치적 참여를 높이는데 기여한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증명해냈다. 최진실 사채설과 관련해 신뢰할 만한 정보를 생산한 중요한 온라인 소스가 블로그라는 연구결과도 발표됐다.

이 두 논문을 통해 시민이 생산하는 정보가 온갖 루머로 점철돼있지 않고 신뢰할 만하며 오프라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효과를 낳는다라는 결론을 우리는 도출해낼 수 있다. 규제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의 정보 생산 참여를 차단하려는 엘리트의 의도가 읽힌다.

엘리트는 집단 지성을 신뢰해야 한다

분명 ‘날 것’의 문화엔 욕설도, 비방도, 허위 사실과 비방도 섞여있다. 거르지 않은 정보의 위험성도 존재한다. 영미권의 주요 언론도 다양한 방식으로 인종차별과 명예훼손성 시민 콘텐츠 정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통계적으로 소수일 뿐이다. 전체 악플의 75%를 전체 인터넷 사용자의 5%가 생산한다는 조사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5%로 시민에 의해 95% 시민의 참여가 배제되는 한국 인터넷 문화의 현실은 모순 덩어리로 비칠 수밖에 없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인간의 장점을 판별할 수 있는 민중의 자연적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테네인들과 로마인들이 계속적으로 탁월한 선택을 한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것을 운이었다고 치부할 수는 없다”고 했다. 시민의 참여가 만든 역사적 성공 사례를 운으로 여겨선 안된다는 의미다. 시민의 참여를 기반으로 한 ‘대중의 지혜’, ‘집단 지성’이 역사적으로 작동해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테제는 온라인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온라인의 주인도 시민이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진화 방향은 민주주의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시민 참여라는 민주적 방법론을 채택하지 않는 미디어는 생존의 위협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 집단으로서 다중의 천재성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정부든 미디어든 온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는 웹2.0의 철학에서 배우고 있다. 구글을, 네이버를 탓하기 전에 스스로 시민의 참여를 얼마나 진작시켜왔던가를 진지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엘리트로 남고 싶다면 지금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것이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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