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한국 민주주의의 핵심 문제들 - 사회적 다원주의의 위기와 양극화

사실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한국 저널리즘의 품질과 큰 관계 없이 개선되고 진보해 왔습니다. 여러 이론들에서 제기되고 있지만, “민주주의와 저널리즘의 관계는 직접적인 함수관계가 아니다”(임상원, 2018, p.340)거나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리프먼도 “시민들에게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이 맞기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일찍감치 말한 바 있습니다. 정치학자들도 이런 입장과 견해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전제를 부정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가 던질 수 있는 질문은 ‘민주주의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데 저널리즘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로 좁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민주주의가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의하고, 그것을 해결하는데 저널리즘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여야 한다는 것이죠.

현재, 한국 민주주의가 당면한 핵심 문제는 무엇일까요? 이 질문 또한 무척 포괄적입니다. 어떤 민주주의를 지향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대의제 민주주의에 방점을 두는 쪽과 참여 민주주의, 또는 사회 민주주의에 힘을 싣는 쪽이 견해가 다를 수도 있을 겁니다. 따라서 당면한 한국 민주주의의 핵심 문제를 드러내는 과정 또한 무척이나 고단한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논의 전개의 편의를 위해 두 개의 논문을 중심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당면 문제를 추출해내려고 합니다. 최장집과 배병인의 논의입니다. 두 논문은 자유주의 계열의 민주주의론과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의 민주주의론을 문재인 정부를 중심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했습니다. 사실 ‘당대'라 할 수 있는 문재인 정부를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비판하는 논문은 그리 흔하지 않더군요. 언론 기사들은 뭐랄까요? 여전히 논의의 깊이가 약하거나 근거가 취약하다거나 이론적 토대가 빈약한 경우가 많아서 배제했습니다. 이 점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제가 최장집 선생에 대한 편향이 다소 존재한다는 점을 이해해주세요. 아래 제 책장을 보시면 알겠지만, 학부 때부터 최장집 선생님의 저서들과 그가 추천한 정치학 서적들은 꼬박 챙겨 읽고 보관해 둘 정도로 그의 주장에 경도돼 있는 편입니다. 그래서 더 논쟁적으로 바라보는 분들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논의를 전개할 수밖에 없다는 점 다시 한번 이해를 구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논박이 더욱 중요합니다.

최장집이 바라보는 한국 민주주의의 당면 문제들

최장집은 한국 민주주의가 당면한 핵심 문제로 ‘감정의 양극화'를 들고 있습니다. ‘진영간 대립의 심화'라는 의미로 이해하셔도 될 듯합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최장집(2020, p.1-2)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진영 간 대립이 공론장을 해체하고 사회를 양분하며 극단적인 갈등으로 나타날 때,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제도들은 순기능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 그것을 움직이는 윤리와 규범은 효능을 상실하며, 통치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이러한 양극화는 한국의 민주주의 정치 체제가 건강하게 작동 또는 발전할 수 없도록 하는 다음의 세가지 현상을 동반한다. 그것은 때로 양극화의 원인이기도 하고, 때로 결과이기도 하면서 서로를 강화한다.”

감정의 양극화가 불러오는 3가지 현상은 이렇다. 첫째는 삼권분립을 불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시민사회의 다원주의적 발전을 가로막는 것, 둘째는 여당과 야당 간 타협과 협력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 셋째는 사회 저변으로부터 요구되는 이해당사자들의 다원적 의사를 대표하고 반영하며, 체계적이고 일관된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성과를 만들어내기가 어렵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최장집은 ‘빠’ 문화로 상징되는 양극화의 주체 세력인 ‘아노미적 시민'으로 인해 ‘동원된 다수의 전제정'이 나타날 우려가 크다고 염려했습니다. ‘빠' 문화로 인해 한국 사회가 ‘제한적 다원주의'에서 ‘제한되지 않은 다원주의'로 나아가지 못하고 단원주의로 퇴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여러 통로를 통해 보도가 되고 있지만 특정 지지세력을 의식해 자유로운 발언을 하지 않는다거나 표현의 자기검열을 일상화하는 부작용이 심화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언론사 기자들은 ‘아노미적 시민'들로 인해 진실과 대면하길 주저하거나 두려워하는 현상이 자주 발생하기도 합니다.

배병인이 바라보는 한국 민주주의의 당면 문제

최장집이 자유주의 입장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당면 문제를 드러낸 경우라면, 배병인은 사회 민주주의 측면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핵심 문제를 제기한 쪽에 가깝습니다.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본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배병인의 논문을 제가 선택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배병인은 문재인 정부 한국 민주주의의 당면 문제의 근원은 자유주의의 과잉에 있다고 간주했습니다. 촛불에서 확인했다시피, 시민들은 구조적 불평등, 부의 세습 등의 경제적 문제를 민주주의가 해결해주기를 바랐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봤습니다. 배병인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적대적 관계에 놓여있다고 보고, 자유주의의 자산인 사유재산권과 시장경제질서를 민주주의가 제약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평등한 인민의 지배'라고 규정하면서, 자유주의가 역으로 민주주의의 원리를 제약하고 있다고 본 것이죠.

이러한 문제 도출은 “촛불집회는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임금격차가 확대되고, 청년 실업이 증가하는 등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중산층이 점차 불안정해지거나 붕괴되는 상황에서 발생했다"라고 본 윤상철(2019, p.22-23)의 분석과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다만 중산층의 비중이 높을수록 민주주의적 토론과 합의가 활성화하면서 정치체제의 안정성이 높아진다는 정치발전론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존재할 뿐입니다.

한국 민주주의의 당면 문제로서 정치적-경제적 양극화

두 논의를 종합하면 한국 민주주의가 당면한 핵심 문제는 정치적, 경제적 양극화라고 요약해볼 수 있을 겁니다. 정치적 양극화는 두 쪽의 대립된 진영으로 인민이 포섭돼 극단화한 대결 양상으로 치닫는 문제를 의미하고, 경제적 양극화는 민주주의의 작동 오류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하는 문제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쪽이 선행이고 후행 조건인지는 제가 여기서 가늠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또한 위기의 결과로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것인지 이 문제로 인해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것인지도 제 깜냥에서는 분석해내기가 어렵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최장집이 언급한 다원적 민주주의가 특정 지지세력을 지칭하는 아노미적 시민에 의해서 위협받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저소득층의 이해가 민주적 제도에 의해 대변되지 않음으로써 자본주의-민주주의 경쟁 및 견제 구도가 흔들리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그것이 자유주의의 과잉에 의한 것이든, 저소득층의 참여 부재를 틈 탄 정치-경제 엘리트 간의 유착에 의한 것이든 현실로서 당면하게 된 문제인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한때 최장집이 종종 인용했던 샤츠슈나이더는 “사회 하층의 요구와 경험을 이해하고 통합하는 일을 민주주의가 다른 어떤 통치체제보다도 잘 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정당이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인민 주권은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는 논리였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배병인의 논의와 주장은 최장집의 민주주의론에 포괄되고 있긴 합니다. 최장집은 그 전 저서에서부터 정당에 의한 노동 대변의 배제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거론해왔기 때문입니다. 경제적 양극화는 어쩌면 그가 말하는 다원적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다원의 주체 중 하나로서 노동을 제도 안으로 통합시키지 못해 발생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최장집(2020, p.17-18)이 강조한 바대로,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가 지닌 가장 큰 문제가 정치/경제적 양극화와, 사회적 다원주의의 결여라고 가정을 한다면, 그리고 저널리즘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할 모델을 정립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또한 관련된 보도/취재 강령을 제안한다면, 다원적 사회 구성과 의견 제시를 위한 취재원 인용의 규범과 규정을 구체적으로 명시해 제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정치적/경제적 양극화를 부추기고 증폭시키는 언론 행위는 민주주의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유형의 보도 관행을, 특히 최장집이 언급했던 ‘동원된 다수의 전제정'을 지향하는 보도 유형을 우리가 저널리즘의 정의 안으로 포함시킬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는 저널리즘을 우리는 저널리즘으로 분류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 앞에 진지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연재 순서

(1) 민주주의를 위해 저널리즘은 꼭 필요할까?
(2) 한국 민주주의와 저널리즘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조건
(3) 당대 한국 민주주의의 핵심 문제들
(4) 당대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 해결을 위한 저널리즘의 역할 모델
(5) 결론을 향하여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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