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글은 언론중재위원회가 발간하는 언론사람 2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뉴욕타임스가 대선 후보 지지선언을 시작한 건 1860년의 일이다. 무려 160년이 된 전통이다. 그것의 절차, 영향력, 보도 방식 등이 변화하긴 했지만, 발표 행위 자체가 중단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창간 이래 단 2차례만 생략했다는 자랑스런 언설만이 그들의 입과 지면을 통해 소개될 뿐이었다.

대선 후보 지지 선언은 불편부당을 생명으로 삼는 저널리즘 행위자들에겐 모순적 행태다. 국내 적잖은 언론사들이 대선 후보 지지 선언을 검토했지만 지속적인 전통으로 굳힌 곳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기도 했다. 사실과 의견을 분리하는 객관주의 저널리즘의 오랜 관행과 전통, 정파성이 점철된 한국 언론의 역사 속에서 이를 유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뉴욕타임스는 무려 160년 간 단 한번도 빼놓지 않고 대선 후보 지지 선언을 이어오고 있다. 심지어 1960년 이후 일관되게 민주당 후보만을 지지했다는 점에서 당파성 논란에 충분히 휩싸일 만도 했지만.

뉴욕타임스 후보지지 선언의 파격

2020년 1월19일, 뉴욕타임스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대선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번에도 민주당 후보였다. 하지만 이전과는 절차와 방식이 너무 달랐다. 우선 편집국과 분리된 논설위원실(editorial board)은 민주당 대선 후보들과 인터뷰한 모든 내용을 텍스트로 그리고 영상으로 공개했다. 심지어 신문 지면이 아닌 훌루와 같은 방송을 통해 과정과 결과를 낱낱이 설명했다. 발췌록에 담기지 않았던 뒷이야기도 다양한 형태로 내보내고 있다. 그야말로 이례적이고 파격적이다.

뉴욕타임스의 지지 선언 절차는 곧잘 교황의 선출 절차인 콘클라베에 비교됐다. 워싱턴포스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엄숙하고 비밀스러우며 대중과 거리가 먼 그런 특성 때문이었다. 그만큼 대선 후보 지지 선언 절차는 그들에겐 특별하고 조심스러운 숭고한 그들만의 의례였다. 내부에서 어떤 토론이 이뤄지는지, 어떠한 기준이 제안되고 수용되는지, 최종 선정까지 어떠한 의견들이 교환됐는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그것이 당연했고 전통이었으며 관행이었다. 지금 그 관행에 균열이 만들어졌고 변곡점이 찍힌 것이다.

사실 뉴욕타임스는 미국 안에서도 신뢰 수준이 절대적이지는 않다. 공화당 지자들에겐 그야 말로 ‘적’으로 인식될 정도다. 그렇다고 민주당 지지자 내에서도 신뢰도 1위를 기록하는 수준도 아니다. ABC, NBC 등 방송을 지나고 나서야 신뢰하는 언론사에 이름이 오를 정도다. 최근 들어서는 여느 언론들처럼 신뢰의 하락도 경험했다. 그럼에도 뉴욕타임스는 후보 지지 선언을 중단하는 결단을 내리지는 않았다.

뉴욕타임스판 콘클라베의 ‘절차 공개’ 선언은 ‘신뢰의 위기’에 처한 저널리즘에 있어 투명성이 왜 대안적 윤리 규범으로 유력한지를 보여준다. 그간 저널리즘은 과학적 방법론의 도구상자 안에서 보도 방법을 수혈받아왔다. 사실과 의견의 분리라는 객관주의적 보도 방법도 실은 실증주의라는 과학적 방법론의 일부를 차용해 내재화한 결과다. 수많은 프로파간다 주체들과 저널리즘 행위자를 차별화하기 위해 우연적으로 혹은 불가피하게 수용한 윤리이자 방법론이다. 하지만 이러한 객관성의 가치 규범은 역사적 도전 앞에서 수차례 부침을 겪어왔다. 탈진실은 강고한 객관성의 윤리가 더이상 신뢰를 지탱하는데 효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결정적 신호이기도 했다. 엄격한 객관주의적 방법론으로 보도를 제공하더라도 수용자들이 신뢰하지 않는 역설적 상황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시점에 저널리즘은 투명성의 가치를 재발견한 것이다. 투명성은 이 과정에서 도출되고 재해석되는 대안적 틀이라는 측면에서 수많은 고민거리를 던지고 있다.

과학계 논문의 투명성과 저널리즘

이미 과학계는 실험의 재현성만큼이나 중요한 윤리적 기준과 방법론으로 투명성을 강조해왔다. 다수의 격조높은 과학 학술지들은 실험 방법과 실험 데이터를 더이상 원고 분량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공학 논문의 경우 실험에 사용된 방대한 규모의 데이터를 링크와 함께 공개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또한 그것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검증의 문도 활짝 열어두었다. 실험의 독립성을 중요치 않게 여기지 않는 건 아니지만, 투명성의 강화로 보완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경주하고 있다. 뉴욕타임스판 콘클라베의 투명성 강화는 저널리즘과 과학이 다시 대화와 교류를 개시한 흔적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항상 과학이길 원했던 저널리즘은 과거처럼 과학의 방법과 윤리를 재수혈함으로써 다시금 과학의 반열 위에서길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뉴욕타임스의 지지 선언 투명성 강화가 신뢰의 회복에 어떤 기여를 하게 될지는 현재로선 장담하기 어렵다. 트럼프발 허위조작정보가 횡행하고 대통령 탄핵안이 하원을 통과할 정도로 정치적 불신이 팽배한 역사적 시점에서 저널리즘 투명성이 갈라진 진영 간의 대화를 다시금 복원시킬 수 있을지도 불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저널리즘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게 된다면, 투명성이 보편의 저널리즘 문화로 귀착되는 건 오래 걸리지 않을 수 있다. 한국처럼 언론에 대한 불신이 심각한 저널리즘 생태계에서, 뉴욕타임스 식의 파격적인 투명성은 신뢰 회복의 힌트로서 충분히 검토될 만한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