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저널리즘을 다시 불러낸 건 정보와 지식의 생산과잉이다. 정보는 차고 넘치지만 믿을 만한 정보는 여전히 부족하다. 독자들의 탐색 비용도 낮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검색이라는 최상의 솔루션은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전달하는데 아직 2%가 부족해보인다. SEO와 검색 어뷰징은 검색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검색이 플랫폼 사업자의 해법이라면 서비스 저널리즘은 콘텐츠 생산자의 대안이다. 독자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문제를, 전문성과 신뢰를 갖춘 기자가 해법을 찾아주고 도움을 제공하는 저널리즘 장르다.

서비스 저널리즘이란?

사실 서비스 저널리즘이라는 개념 자체가 새롭지는 않다. 유형의 계보는 가깝게는 1960년대, 멀게는 1900년대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38년 게재된 뉴욕타임스의 ‘이주의 먹거리 뉴스’는 1900년대 초반을 상징하는 서비스 저널리즘의 전형이다. 타블로이드 신문에서 꽃을 피웠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그만큼 역사가 길고 전통이 깊다.

하지만 저널리즘이라는 숭고한 정의 속으로 편입되기엔 뭔가 모를 가벼운 맛이 존재했다. 감시견 저널리즘의 묵직함을 갖추지 못했기에 연구자들로부터도 외면받았다. 그것이 커뮤니티에 기여해온 정도에 걸맞는 평가조차도 얻지 못했다. 시민의 일상과 밀접한 정보의 생산은 저널리즘의 하위 부류쯤으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서비스 저널리즘의 공공적 역할

앞서서도 언급했지만, 서비스 저널리즘은 일상의 문제와 관련된 지식과 정보의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했다(Eide & Knight. 1999). 표현 양식은 타블로이드 저널리즘의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저널리즘 어법에서 빌려왔다. 이러한 흐름이 모여 서비스 저널리즘이라는 조류를 만들어냈고, 중요한 저널리즘의 장르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공론장의 관점에서 서비스 저널리즘은 후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엄숙주의에 사로잡힌 저널리즘의 전통 속에서 서비스 저널리즘은 자랑기엔 부끄러운 서자와도 같은 존재였다. 타블로이드적 언어와 표현 양식은 이런 편견을 더욱 강화했다.

아이드와 나이트(Eide & Knight. 1999)는 서비스 저널리즘을 공론장 측면에서 재조명한 첫번째 연구 그룹이었다. 이들 연구자들은 독자들의 사회적 정체성을 시민, 소비자, 고객으로 구분한 뒤, 서비스 저널리즘은 혼종적 사회 정체성 개발을 재현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소비주의에 대한 재고찰을 통해 그것의 의미를 추출해냈다. 먼저 서비스 저널리즘이 “주로 소비주의의 논리를 따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점을 거론한다. “오디언스를 권리를 지닌 시민으로 간주하지 않고 시장의 교환논리에 따라 사회의 공적 삶과 관련된 사적이며 수동적인 개인으로 본다”는 기존의 논의도 주지시킨다(Eide & Knight. 1999 ; 536-537).

하지만 보들리야르의 ‘소비자-시민’이라는 혼종적 정체성 개념을 인용하며 “후기 근대의 정체성 조건으로서 소비주의가 시민권을 대체한다라기보다, 어느 정도까지는 두 단어의 경계가 넓은 감각적 차원에서 프로모셔널리즘의 개발로 인해 희미해진다”고 반박했다. 시민권과 소비주의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인식에서 벗어날 것으로 주문하면서다.

또한 이들은 소비주의의 역사를 파헤치면서 “근대 소비자의가 기본적으로 시민권을 상정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서비스 저널리즘은 사적 문제를 공적 포럼을 통해 중계함(airing)으로써 공적/사적 구분을 횡단한다고 말한다. 결국 둘은 떨어져있는 것이 아니라 뒤섞여있으며, 서비스 저널리즘은 이렇게 분리된 정체성을 통합하는데 기여함으로써 공론장 내에서의 위상을 확보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서비스 저널리즘의 재조명

비교적 지난 시기이지만, 2017년 들어 서비스 저널리즘은 반전을 꾀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에 따른 수익 모델의 위기 속에서 서비스 저널리즘은 다시금 저널리즘의 전면에 등장했다. 웹2.0이라는 기술적 흐름도 한몫 보탰다. 뉴스 생산 과정에 시민의 참여가 보다 쉬워지면서 서비스 저널리즘의 구현 방식도 간편해졌다.

무엇보다 뉴욕타임스의 공이 컸다. 뉴욕타임스는 2015년 10월 ‘Our Path Forward’ 보고서를 통해 서비스 저널리즘을 중요한 축으로 상정한다고 선언했다. 당시 뉴욕타임스의 보고서에 담긴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독자들은 뉴스와 엔터테인먼트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며 뉴욕타임스로 들어온다. 그들은 일상 생활에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움을 얻기 위해 뉴욕타임스로 방문하게 된다. 신문은 항상 중요한 서비스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어떤 드라마를 시청해야 하는지,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 어떤 아파트를 구입해야 하는지 독자들의 결정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모바일에서 더 많은 가치를 부가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서비스 저널리즘을 현대화하려는 노력은 1년 전 '쿠킹'(Cooking)에서 시작됐다. 우리의 목표는 우리 독자의 특별한 필요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의 컨텐츠와 전문성을 활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저녁 식사를 위해 무엇을 요리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이다.  거의 500만 명의 월간 사용자가 방문하고 있는 Cooking은 독자들에게 인기가 높아서 이 같은 접근 방식을 부동산, 건강 및 영화 및 TV로 확대하고자 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1970년대에 시작한 것과 동일한 열정과 창의성으로 모바일 시대에 맞게 기획 섹션을 재구상할 것이다."(NewYorkTimes. 2015.10.7)  

서비스 저널리즘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전향적인 태도는 2016년 와이어커터의 인수로 이어졌다. 베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최근 시도되고 있는 Smart Living, Guides 코너는 서비스 저널리즘의 후속 작업이다. 지난 3월30일에는 ‘스마트 리빙 선언’까지 내놓으며 서비스 저널리즘의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단 뉴욕타임스에만 한정돼있지 않다. 버즈피드의 푸드 뉴스 섹션인 ‘테이스티’도 서비스 저널리즘의 유형이다. 뉴욕매거진의 ‘Strategist’, 쿼츠의 Quartzy도 모두 같은 카테고리로 묶일 수 있는 저널리즘 장르다.

이제 서비스 저널리즘은 유행이 됐다. 언론사의 특정 버티컬로 기획되는가 하면, 독립 언론사의 형태로 서비스 저널리즘이 등장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해외에선 빌폴드, 국내에선 디에디트 등이 서비스 저널리즘의 새로운 주자로 나서고 있다.

서비스 저널리즘과 수익모델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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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비스 저널리즘의 부상은 수익모델 탐색이라는 맥락 속에서 살펴야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저널리즘 생태계는 현재 디지털 전회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수익의 빈곤을 절박하게 경험하고 있다.

디지털 광고 시장은 구글과 페이스북이 사실상 독과점하는 시장으로 변모했다. 그들이 가져가고 난 나머지 고물로 연명하기엔 규모가 너무 작기만 하다. 결국 콘텐츠를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전략을 구사하면서 브랜디드 콘텐츠, 스폰서드 콘텐츠 시장을 공략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서비스 저널리즘은 이 새로운 광고 유형과 흡착력이 높다. 뿐만 아니라 대중적 소비가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독특한 특성도 갖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쿠킹 페이지가 월 500만 사용자를 확보한 점, 버즈피드의 테이스티가 새로운 생명줄로 떠오른 점 등을 보면, 그것이 지닌 장점을 쉽게 확인해볼 수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친절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성 높은 콘텐츠를 갈망하는 독자군들이 저변에 폭넓게 퍼져있는 상황도 서비스 저널리즘의 유행을 거들고 있다. 단, 서비스 저널리즘이 지켜왔던 엄격한 저널리즘 기준만 지탱해간다면, 수익과 독자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매력적인 장르임에 분명해 보인다.

서비스 저널리즘의 내일

니키 우셔(Usher, 2012)는 서비스 저널리즘을 협력적 스토리텔링으로 바라봤다. 독자들과 교감하면서 커뮤니티를 구축하는데 서비스 저널리즘이 역할을 발휘한다는 의미에서다. 또한 커뮤니티가 기자에게 인사이트를 제공하면서 정보의 질은 높아지고 커뮤니티의 응집도는 더욱 탄탄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보 자체의 보도를 저널리즘의 거룩함 속에서 배제하려 했던 관행은 지금 재설정을 요구받고 있다. 서비스 저널리즘의 재부상을 ‘뉴스의 사회적 기능의 전환’으로 봐야 한다는 Hanitzsch의 견해도 긍정적으로 수용해볼 필요가 있다.

서비스 저널리즘은 개인이 일상을 살아가며 부딪히는 어려움과 불만을 풀어주고, 이를 문제화함으로써 저널리즘의 사회적 기능을 확장하고 있다. 지금의 흐름을 일시적 유행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독자의 다양한 사회적 정체성을 통합함으로써, 저널리즘의 정의를 풍성하게 하는 의미있는 조류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독자들의 일상의 결정을 돕고, 삶을 더 풍성하게 살찌울 수 있도록 돕는 노력을 증대시킬 계획”이라는 뉴욕타임스의 선언을 진지하게 읽어보자.

올해 초 기사입니다. 버즈피드의 음식 채널인 Tasty가 온디맨드 요리책을 판매(https://tastybook.com/products/cookbook#review)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아실 겁니다. 지난해 11월에 론칭해서 두 달 동안 10만부를 팔았는데요. 2016년 음식 서적 베스트셀러 판매 부수와 비교를 해봤더랬습니다. 대략 11위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단 두 달 만에 이뤄낸 성과입니다. 현재 페이스북 페이지 구독자가 8400만명인데요. 이를 기준으로 구매 비율을 계산해보면, 둘 달 동안 약 0.1%가 실제 구매에 참여한 셈이 되더라고요. 한 달이면 0.05%.그래도 수익은 적지 않습니다. 페이퍼백이 24달러인데요. 10만부를 계산해보면, 240만 달러. 우리돈으로 27억1200만원입니다. 이대로 1년을 판매한다면, 연간 판매량은 60만부. 1440만 달러, 우리돈 162억원을 벌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대략 계산하면 그렇다는 의미입니다.

다음은 서비스 저널리즘의 주요 사례들입니다.

참고 자료

  • Eide, M., & Knight, G. (1999). Public/private service: Service journalism and the problems of everyday life. European Journal of Communication, 14(4), 525-547.
  • Usher, N. (2012). Service journalism as community experience: Personal technology and personal finance at the New York Times. Journalism Practice, 6(1), 107-121.
  • NewYorkTimes. (2015.10.7). Our Path Forward.
  • TIM HERRERA.(2016.12.) THE SAFE SPACE OF SERVICE JOURNALISM. Nieman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