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7일 어딘가에 투고했던 칼럼)

며칠 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4월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인 예비후보의 전략을 담당하는 후배 녀석이다. 무슨 고민이 그렇게 깊었든지 내리 20~30분을 푸념만 늘어놨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SNS가 대세라 하긴 해야겠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안하자니 20~30대 표 모으기가 힘들고, 하자니 사고 터지면 통제가 안되고, 주변에 괜찮은 사람 좀 소개시켜달라.”

그리곤 덧붙였다. “상대 진영에서 후보에 대해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어떻게 하죠?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면 더 좋겠어요.”

2012년 ‘선거 풍년‘에 접어들면서 정치인들의 SNS 공포가 커지고 있다. 정확히는 SNS를 통해 실체화하고 있는 시민 공포(citizen phobia)다. 때문에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보다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로 궁금증이 수렴한다. 예전 같으면 사적인 인맥을 동원해 부정적인 기사를 내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통제 불가능한 미디어 환경 앞에서 그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후배에게 지난 2010년 콜롬비아 대선 사례로 답변을 대신했다. 당시 후보로 나선 후안 마누엘 산토스의 지지율은 선거 50일 앞두고, 곤두박질쳤다. 경쟁 후보인 안타나스 모쿠스보다 12%나 뒤지기까지 했다. 진단 결과 상대 후보 진영의 네거티브 캠페인이 온라인 여론을 잠식해가고 있는 것으로 판명됐다.

산토스 후보는 쉽지 않은 결단을 내렸다. 온라인에서 네거티브 캠페인이 먹혀들고 있는 상황을 정면 돌파하기 위해 ‘수치의 벽'(wall of shame, muro de la vergenza)이라는 블로그를 개설했다. 페이스북, 트위터에 떠돌고 있는 모든 허위 사실들을 낱낱이 수집해 자신의 블로그에 게시했다. ‘산토스가 대통령이 되면 안되는 이유 20가지’라는 제목의 글부터 ‘테러리스트’라고 언급한 게시물까지 과감하게 끄집어냈다. 그리곤 하나하나 해명, 반박 글을 작성했다. 피하기보다 드러냈고, 숨기기보다 공개했다. 추락하던 지지율은 반등하기 시작했고, 결국 대통령에 당선되는 드라마 같은 장면을 만들어냈다.

일반적으로 시민의 기억 속에 묻혀있던 특정 정치인에 대한 정보는 선거 시기가 닥치면서 디지털로 변환된다. 이 과정에서 왜곡과 창작이 가미되며 퍼즐처럼 한 명 정치인의 디지털 이미지를 구성하게 된다. 산토스는 왜곡과 창작이 이미지로 구축되는 프로세스에 개입하면서 솔직함, 진정성으로 잘못된 정보를 탈각시키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그의 전략은 SNS발 시민공포증에 떨고 있는 국내 정치인에게 교훈적인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기실 여론의 통제에 익숙하던 그들에게 통제되지 않는 여론은 공포 그 자체다. 그 탓에 ‘무슨무슨 전문가’라 자처하는 이들에게 기대, 얄팍한 기교와 교묘한 기술로 상황을 모면코자 하는 ‘꼼수형’ 대응책을 쏟아낸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경험한 바다.

산토스는 정치도 SNS도 본질은 시민, 그리고 사람이라는 사실을 몸소 확인시켰다. 본질을 방법론으로 구축하고자 하는 정치공학적 사고가 SNS 미디어 환경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걸 증명했다. 과오를 과오대로 드러내어 네거티브를 포지티브로 전환시킬 수 있는 진정성의 정치. 바로 산토스가 ‘수치의 벽’을 통해 우리 정치에 던지고 있는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