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언론사람 4월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뉴스를 소비하는 호흡을 코로나19 사태 기간만이라도 조금은 늦춰보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써봤습니다. 저는 요즘 주간지를 읽기 위해 조금 애를 쓰고 있습니다. 저 나름의 '소셜미디어 거리두기', '뉴스 거리두기' 실천 방식이라고 할까요?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는 물리적 거리 확보를 통한 사람의 안전 확보가 주된 목적이다. 간극과 간격 그리고 격리는 코로나19 국면에서 우리의 안녕을 담보하고 방역의 효과를 제고하기 위한 예방적 조치다. 급속하게 퍼져나가던 코로나19의 불길이 잡힌 것도 따져보면 사회적 거리두기의 동참이 시발점이 됐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역설적이게도 ‘소셜미디어 거리두기’(Social Media Distancing)의 실패를 불러왔다. 격리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사회적 거리가 멀어질수록 소셜미디어와의 간격은 좁아졌다. 유튜브와 페이스북, 카카오톡과 포털 카페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틈을 비집고 인간에게 더 가까이 들어왔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소셜미디어 거리두기가 반비례 함수임이 입증된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소셜미디어 거리두기가 교차하는 지점은 또다른 위기가 발화하는 트리거 포인트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장기화로 심리적 불안감이 심화하면서 소셜미디어의 화력은 배로 커졌다. 외롭기에 기대게 되고, 불안하기에 의존하게 됐다. 공업용 알코올을 들이마시다 27명 이상의 이란 시민이 사망한 사건이나, 따뜻한 소금물로 소독하다 수십명의 집단 감염을 일으킨 어떤 교회의 사건도 모두 사회적 거리두기와 소셜미디어 거리두기의 교차점에서 발생했다. 기껏 거리두기에 성공하고도 몇 차례의 소셜미디어 거리두기에 실패하면서 이런 비극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뉴스 거리두기‘(News Distancing) 실천이 어려워지긴 마찬가지다. 인간은 좋은 정보보다 나쁜 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를 부정 편향이라 한다. 부정 편향은 인간의 보호 본능이 확장하는 과정에서 진화한 인지 편향의 한 유형이다. 공포, 불안, 자극 등 부정적인 뉴스에 한번 더 눈길이 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심리학은 그래서 ‘부정적인 것이 긍정적인 것보다 더 강하다'는 테제를 지금껏 부정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뉴스가 인간의 부정 편향을 상업적으로 활용한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로 예상 못한 사망자 급증하고, 있지도 않던 지옥문이 열리며, 드러나지도 않던 디스토피아가 도래하는 등 온갖 종류의 공포스런 뉴스가 우리의 몰입을 유혹한다. 길거리를 걸어다니기만 해도 코로나19에 감염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건 소셜미디어뿐 아니라 뉴스도 다르지 않았다. 이처럼 대부분의 뉴스는 코로나19 국면에서 부정의 기운을 먹고 야금야금 성장 중이다. 뉴스의 총량도 늘어났고 소비시간까지 증가했다.

부정적 뉴스는 언론사를 살찌우지만, 인간의 건강을 갉아먹는다. 오죽하면 부정 편향이 유발한 스트레스가 감염에 대한 저항성마저 떨어뜨린다는 논문까지 발표됐을까. 롤프 도벨리의 저서 ‘뉴스 다이어트'가 지금 시점에 출간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도 강조하듯, 뉴스 다이어트는 몸과 정신을 ‘실제로’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더이상 선택으로 남아서도 안될 시점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는 인간과 소셜미디어 그리고 뉴스의 거리를 좁혀놨다. 허위정보에 대한 의존성을 높였고 불안감을 부추기는 뉴스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소셜미디어와 부정적 뉴스의 절묘한 교합은 사회적 거리두기의 효과를 반감시키는데 일조했다. 치료제 개발 등을 위해 기껏 벌어놓은 시간을 ‘미디어 연합군’이 까먹는 안타까운 오늘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소셜미디어 그리고 뉴스와 거리두기는 저널리즘과 대척점에 있지 않다. 오히려 저널리즘의 본질과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한 역설적 해법이다. 광고 벌이에 나선 루머 생산자들, 트래픽 벌이에 나선 부정적 뉴스 공급자들에서 적정 거리만큼 떨어져 본래의 긴호흡을 되찾자는 저널리즘 운동이다. 맥락이 담긴 두툼한 진짜 정보에 시간과 주의를 할당함으로써 정보 흐름의 적정 호흡을 재발견하자는 제안이다. 탐사보도와 해석 저널리즘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코로나19를 저널리즘 가치 회복을 위해 자연이 선사한 귀중한 시간으로 재해석해볼 필요가 여기에 있다. 메르스 때는 실패했지만 코로나19 때는 달라야 한다.